•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복과 저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 시킬 때, 얼마든지 그냥 탈출시킬 수 있었지만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체험 시킨 후에 애굽에서 나오도록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신 것은 장차 가나안 여정 길에 혹시라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크나큰 배려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바다 앞에 이르자, 뒤에서 좇아오는 애굽 군대들을 바라보고는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홍해바다를 갈라서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하시고 모두를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하신다. 그들은 애굽에서 땅과 하늘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좀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려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기를 쉬지 안했다. 
하나님은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차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고자 몇 번이나 결심 하셨지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생각하시고 참고 인내하시를 반복하시지만 끝까지 원망을 그치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를 보이시고 정말로 죽이려 하자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살려 주실 것을 간청한다. 하나님은 간곡한 모세의 청을 들어 그 백성들을 살려 주신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백성들로 인식하고 이제, 너희 앞에 ‘복과 저주’를 놔 둘 테니 너희가 복을 택하면 살 것이고, 저주를 택하면 스스로 죽게 되리라 말씀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애굽에서 광야 길까지는 ‘내종 모세를 통해서 내가 인도를 해 왔지만,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거기서부터는 너희가 내 율법을 갖고 스스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너희가 나의 율례를 따라 살 것인지, 아니면 너희들 생각대로 가나안 신(神)들을 따라 살 것인지 너희들 스스로 결정 하라는 것이다. 너희 들 결정에 따라서 나도 너희가 하는 대로 그대로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너희들이 나의 법대로 말씀을 따라 살면 나도 너희 앞에서 가나안 7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하나하나 몰아내서 너희들로 하여금 편안히 살도록 해 주겠지만, 만약 너희들이 내 율례를 어기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는 나도 너희 앞에서 가나안 7족속들을 몰아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더 강하게 번성 시켜서 너희들을 괴롭히는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실지로 이런 사실들은 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시키셨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개인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럴 때에 나 자신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야 된다. 내가 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저주를 선택할 것인가? 어느 누가 미련스럽게 저주를 선택하겠는가만 오늘날 저주가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주를 택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복과 저주란 말은 곧 생명과 사망을 의미한다. 오늘날 생명이 누구로부터 나오고, 사망이 누구로부터 나오는지 조차도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생명을 택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럴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면서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봐가 없다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사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고 반문 할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변명하기 위한 이유나 핑계에 불과 할 뿐이다. 정말로 주님을 따르는 자라면 세상 사람들이 다 즐거운 길로 가더라도 혹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조리 편한 길을 택해서 간다 할지라도 주님의 명령대로 그곳이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따라 가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복’을 선택하면 육신은 그날부터 죽어야 하기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저주’를 선택하면 육신은 우선당장은 편하다. 우리는 복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선택해야 한다. 무조건 복복하니까 복을 선택해 놓고 육신이 죽는 훈련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안하는 것보다 못하다. 저주가 무섭고 두려워서 잠시 피해볼 양으로 복을 선택하는 얌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의 의미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한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길을 걷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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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7-02 18:55
조회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