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때, 예수를 알고 믿는 사람이 있고, 예수를 모르고 믿는 사람이 있다. 예수를 알고 믿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 자신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서 순종 하려는 마음이라도 있지만, 모르고 믿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것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이 두 종류의 사람의 신앙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이 비슷한 거 같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알고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라서 자신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겉으로 요란스럽지 않다. 그러나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만한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라서 겉이 요란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남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누군가 옆에 있을 때, 더욱더 요란한 소리를 내게 된다. 꽹과리가 요란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속이 비워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도 믿음이 없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진정한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 자신을 믿고 살다가 나를 버리고 어떤 다른 누군가를 의지해서 살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믿음이란?’ 바로 나를 버리고,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럼 예수를 왜 믿게 되었는가? 그것은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신앙인들 대부분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예수를 믿었으면 끝까지 잘 믿어야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도리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는 것을 단 회적으로 한번만 믿으면 그것으로 다 되는 줄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끝까지 믿어야’ 된 다는 말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었으면 끝까지 마음을 변치 말고 주님을 의지 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단 회적으로 한번만 믿는다는 말은’ 처음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까지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구원의 증표로 생각하고, 그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라고 말할 때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자꾸 듣고 그것을 실천해 가면서 말씀이 내 몸에서 경험 되어질 때, 비로소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 앞으로 영원히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분에 대해서 내가 잘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그분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둘째,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잘 알아야 한다.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아야 한다고 하니까 혹자는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나란 죄악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면 절대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모실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잘 대우해 드려야 한다. 성령은 나의 영혼을 온전케 해서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오셨는데 성령을 무시한다면 성령도 나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믿음’은 내 안에서 점진적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이 없이 신앙생활 하다 보니까 그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믿음’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도 갈 수 없다고 했으니 이대로 종말을 맞이하고 말다가는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될 일이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먼저는 예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요새는 성경이 많이 보급되어 있고 또 교회에서도 성경에 대해서 많이 가르치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서 대강은 다 알고 있다. 예수에 대해서 알았으면 이제 본인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서는 그나마 학문적으로라도 알려주고 있는데 비해, 인간의 죄 성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주질 못하고 있다. 이것은 왜 그런가? 그것은 죄인이 죄인을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도 겉으로 드러난 도덕적인 것들과 눈에 보이는 사회적인 규범들 이외는 전혀 알려주질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쪽에서 지적하는 죄악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만 인식시켜 놓아서, 인간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은 무조건 사람들이 잘 못해도 다 용서해 주실 거라는 막연한 생각들을 갖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가가 제대로 각인되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죄의식을 느끼고 겸손해지기보다는 은혜라는 말을 남용하여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기 보다는 은혜만 바라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져온 결과가 바로, 내가 어떤 잘 못을 저질렀어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다 해결했으니 나는 죄 없다 하는 식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가? 이렇게 살다 보니 주님을 신뢰 할만한 ‘믿음’이 어디서 싹트겠는가? 한번 잘 못된 신앙은 계속해서 내 안에 보내주신 ‘성령’도 거역하기 마련이다.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아무리 자신이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성경 말씀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안에서 믿어지지 않으면 믿을 수 없게 된다. 바로 성령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내가 믿을 수 있도록 내안에서 역사 하신다. 그런데 내가 성령의 뜻을 거역하고 올바른 믿음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 성실이다. 
이렇게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면서도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그것 때문에 믿음도 없으면서 겉으로는 열심히 교회를 다녀보지만, 심령이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대리 만족을 찾으려고 자꾸 세상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자기 자신 속에 지금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떳떳하게 밝히 들어내 보이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죄악의 속성 때문이다. 어두움이 본능적으로 빛을 싫어하듯이 죄 역시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내 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죄는 감추고 믿음은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을 두고“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와 벨 리알이” 함께 공존 할 수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의 폐부(영)를 살피고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알기 전에 먼저 너를 깨닫고 나에게 오라는 것이다.” 주님은 언제든지 은혜 베풀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자기 자신만 제대로 깨닫고 주님 앞에 나오면 모두가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죄를 깊이 깨닫는 자가 주님도 깊이 알 수 있고, 주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사람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주님은 오늘도 바로 이런 믿음 있는 사람을 찾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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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6-26 18:54
조회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