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야흐로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 돈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다. 실지로 물질세계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세계에 국한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돈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생명만은 돈으로 살수 없다. 또한 그것이 인간의 목숨에 관한 것을 뛰어넘어 영혼에 관한 것이라면 이 세상 것을 다주고도 살수 없다. 이 영혼에 관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죽어도 다시 살수 있는 이름을 주신 것은 오로지 예수 이름뿐이다. 천하에 어떤 다른 이름으로도 다시 살수 있는 권세는 없다. 
보석이 많이 나는 남아프리카 지방에 가면 작은 것은 콩알만 한 것에서부터 큰 것은 어린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보석들을 땅속에서 캐낸다고 한다. 그 보석들이 땅속이나 돌 속에 묻혀 있을 때에는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캐내어진 보석들이 세공업자의 여러 가지 공정과정의 손을 거치면서 하나의 상품가치를 드러낼 때 가장 화려한 빛을 발하게 된다. 
인간들도 똑같은 죄인들 속에서 살 때는 그것이 별로 귀한 것인지 느끼지 못한다. 오늘날은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되어 있어서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천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누구의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이 세상을 먹고 마시는데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고 있고, 한번이라도 더 쾌락을 즐기려는 욕구가 팽배하다. 다시 말해 한탕주의가 너도나도 가슴속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보석이 땅속에 묻혀 있을 때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도 그것이 인간의 손에 의해 발견되어져 갈고 다듬어져서 상품가치를 드러낼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처럼, 인간들도 죄인 속에 함께 묻혀 있을 때에는 인간으로서 전혀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말은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하나님이 정하신 법 규정속에 들어가야 한다. 내 스스로 아무리 잘난 척 해봐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나 혼자 의로울 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성경에 보면 인간의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말은 온 천하를 다주고도 인간의 영혼을 살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영혼이라는 말은 육신의 목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영원히 살수 있는 생명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로 거듭난 영혼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모든 영혼이 거듭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예수 안에서 진실로 거듭난 영혼은 자신 속에 오직 예수만 살아 있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신의 죄악은 죽고 오직 성령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거듭났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100%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이미 죄악 된 자신이 죽은 사람이다. 거듭났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자신 속에서 아직도 끊임없이 죄악이 올라오는 사람은 온전히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아직도 거듭났다는 말을 단정 지어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스스로 단정 지어 버리면 오히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하보다도 더 귀한 영혼이라는 것은 온전히 거듭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님도 바로 이런 사람을 귀하고 값지게 여기는 것이다. 주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맡기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수없이 많아도 아직 온전히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통해서는 그 사람의 분량에 맞는 일을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세상 학문도 유치원 다음에 초등학교, 그다음에 중학교 다음에 고등학교, 다음에 대학교를 졸업하듯이 신앙생활에도 단계를 거치면서 온전한 거듭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천하보다도 더 귀한 영혼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안에서 예수만 살아 계셔야 한다. 예수가 내안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무리의 숫자가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성령을 받았다고 모두가 하나님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 자녀가 되기 위한 하나의 입문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초청을 받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신부는 예복이 있어야 한다.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한사람을 하나님이 내어 쫓는 것을 보게 된다. 예복은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도의 옳은 행실은 성령의 100%로 통치를 받을 때만이 가능하다. 천하보다도 더 귀한 영혼은 여기서도 같은 말로 사용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하는 말씀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으나 그 중에서 예복을 갖춘 자만 하나님께서 주님의 신부로 간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연 몇 명이나 예복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은 내 영혼이 온전히 거듭나는 순간 나를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길 것이다. 그것은 예복을 갖추고 있는 경우와 동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죽이고, 내속에 들어있는 죄악을 실토하며 주님이 나를 지배하여 주시기를 날마다 눈물로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주님도 반드시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신원하여 주실 것이다. 주님도 주님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나타나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영혼을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 신령한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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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7-03 18:56
조회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