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율법과 복음과 성령의 온전한 것.

옛날에 학교를 다녀본 사람들은 시험 볼 때, 누런 갱지에 일일이 그것을 펜촉으로 써서 등사판에 밀어서 시험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시험지는 글씨가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아 잘 보이지 않거나 혹은 등사 잉크가 군데, 군데 뭉쳐 있어서 선생님에게 몇 번식 문제를 물어 가면서 시험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도 틀린 글씨가 너무 많다 싶으면 희미한 글씨나 틀린 글자를 칠판에 써주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문명기기의 발달로 이런 비생산적인 일들이 사라지고, 대신 새롭게 등장한 컴퓨터가 이런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이 묵은 것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갈라디아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 로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어리석도다. 성령으로 시작 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하면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울분을 토하고 있다. 바울의 이런 아픔 뒤에는 자신이 그동안 유대교에 있다가 주님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뒤라서 누구보다도 그들의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깊은 뜻은 “너희가 새로운 것을 받아 놓고도 왜 또 다시 옛날 것으로 돌아가 살려고 그러느냐는 것이다.” 

사실 갈라디아 인들은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아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에 몸담고 있던 자들도 예수를 믿겠다고 나선 자들이 많이 있었다. 또 그런 자들 중에는 자칭 사도나 선지자라 일컫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선전하고 다녔다. 바울이 없는 틈을 타, 이런 자들은 계속해서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당시 아시아에 있는 바울의 복음을 받은 많은 사람들을 미혹 시킨 것이다. 이에 갈라디아 인들은 점점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예수는 입으로만 부를 뿐, 행동은 율법의 주체인 육신을 따라 살기 시작한 것이다. 육체를 따라 살다보니 웬만한 죄를 저질러도 겉으로 드러난 죄만 회개하면 되니까 예수 믿는 일이 그전보다 훨씬 쉬워 보이게 된 것이다. 

바울이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갈라디아 인들을 대했을 때, 그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속아서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예수는 입으로만 부를 뿐,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을 보고 바울은 속이 터 저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문을 열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너희가 뻔히 알면서도 너희가 그들(거짓 선생)을 따라 가느냐?” ‘자세하게 한번 그들을 살펴보아라!’ ‘그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선민의식만 내 세웠지, 진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본 받으려 하지 않고 있었지 않느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율법이 오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냐? 아니면 율법이 오고난후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냐?’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 아니냐?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본받으려 하지 않고, 율법의 우월성만을 내세워 자신들 스스로 의로운 자가 되려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지금 그런 무리들이 너희들에게 나타나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여 너희들을 미혹 시킨 것 아니냐?’ 그들은 겉으로는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실상은 유대교를 전파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나도 유대인이다. 혈통으로 하면 베냐민 지파요 경건한 모습으로 따지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전에 유대교 에 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고 때리며 핍박했던 내가, 그토록 열심을 냈던 유대교를 버리고 생명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해준 것을 너희가 이토록 값없이 버릴 수가 있느냐?’
 바울은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으니 복음으로만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복음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이제 새로운 것이 왔으니 낡고 묵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뜻을 좇아 새롭게 살아 갈 것을 갈라디아 인들에게 목이 터지도록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이 마지막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해석 되어져야 하고 어떻게 적용 되어져야 하는가? 우리 이방인들도 마지막 종말의 때에는 반드시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져야 하고, 성령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남은 마지막 과제이다. 이것이 없이는 누구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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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9-29 19:49
조회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