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주일 낮 설교

본문: 로마서3:1-31

제목: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2000년 동안을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 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처음 율법을 받았을 때에는, 그들은 그 율법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동안 자신이 집에서 정성들여 기른 양을 번 제단 위에서 잡을 때, 자기가 죽어야 할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신의 죄악을 깨달았으며, 또 짐승을 잡을 때 흘린 피를 통해서 육체의 정결함을 입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 율법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자신의 죄악을 깊이 깨달을수록 자신들의 한계를 더욱더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신앙생활은 곧 마음을 다하는 신앙생활로 바뀌어져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앞서게 되므로, 그들은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그 엄한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이라도 그들에게는 그다지 크게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에 임하다보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온전치 못함에도 불구하고(율법을 적용시키고 보면 모두가 사형에 해당할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법으로 다스리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으로 다스려서 그들의 죄만 용서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다. 그러나 그들 속에서도 법으로만 살아가려고 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 법이 자신을 올무에 가두는 함정과 채찍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신앙생활 하던 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형식에 치우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령과 진정은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지고, 고작 한다는 것이 법 테두리 안에서 겨우겨우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 앞에 천국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아들이 나타났어도 그들이 당연히 보지 못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신앙생활에서 신령과 진정을 빼버린 신앙생활은 마치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원리다. 하나님은 영이시오 절대 정직하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겉치레로 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 속에서는 절대로 자신의 죄악을 발견할 수도 또한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죄악을 깨달았을 때만이 곧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오만 불손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죄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이방인들도 보면 성령 받은 것만을 좋아하지 그 성령을 통해서 자신 속에 들어있는 죄악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곧 하나님에 대한 신령과 진정을 빼버린 형식적인 신앙생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그들의 죄악도 깨달아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방인들도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비로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 자는 절대로 주님 앞에서 오만 불손할 수없다. 또 그는 주님의 어떤 말씀에도 불순종할 수없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눈앞에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오늘날 이방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처음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에는 기뻐 어쩔 줄을 몰라서 마치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줄 것처럼 하다가도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뒤에 보면 언제 그랬냐?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욕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게 해놓고서는, 그때부터는 주님에 대한 신령과 진정은 쏙 빼버리고, 겉치레로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치우치게 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 받칠 듯이 설쳐 되던 그가, 형식적인 신앙생활 속으로 빠져들고 나서부터는 고작 한다는 것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십일조하고, 삼일 밤, 금요철야 참석하는 것으로 마치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 했으니까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마음 놓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성령의 법은 자신 속에서 가차 없이 그를 죄인으로 몰아버린다. ‘네가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너는 간음이다.’ ‘네가 이웃을 미워만 해도 너는 살인이다.’이제 그렇게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치우쳐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법이 자신 속에서 그를 마지막 날 주님의 법정에 세워서 그의 숨은 죄악을 모두 낱낱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날 주님 백보좌 앞에서 있게 될 주님의 심판이다.


우리는 구약의 율법이나 현재 성령을 통해서 나에게 주신 법이나, 법으로 따지자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날 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약에서 어느 누가 단 하나의 율법도 어기지 않고 살아갈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으며, 또한 믿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법을 우리 마음속에 주셨듯이, 그 성령을 단 한번이라도 거역하지 않고 살아갈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법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단 한사람도 그 법 앞에서 살아날 자가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란 무엇인가? 그가 바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우리의 몸이 되어주셔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갈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분이 예수요 또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의 요구를 온전해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 마음속에 예수가 계셔야지만, 우리가 성령을 거스르지 않고 온전해 질 수 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힘입기 위해서는 팔짱만 끼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결코 그 법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 법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이 자신의 죄악을 깊이 깨달았거든 나를 내려놓고, 그분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주님 말씀에 절대적 순종은 ‘나는 주님 앞에 절대적 죄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주님 말씀에 대하여 불순종은 ‘나는 아직도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이 주님 앞에서 절대적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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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06-29 17:06
조회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