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죄인으로 드러나서 주님 앞에 떳떳하라!

주일 낮 설교

본문: 로마서6:15-23

제목: 죄인으로 드러나서 주님 앞에 떳떳하라!


우리속담에 도둑이 제 발 저린 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이 주는 의미는 결국 인간은 자기 양심을 속일 수없다는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 세상에 법이 있다지만 그 법을 다 지키며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또한 그가 이 세상 법을 다 지키며 살았다 하더라도, 양심에 가책되는 일을 단 한번이라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겉으로 드러난 사람겉모습만 보고 그가 착한 사람이다. 혹은 악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어 말을 하고 있다. 이 세상 인간으로는 선의 기준이 될 수없다. 선의 기준을 정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시며, 그 선을 우리들에게 직접 나태내신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더더욱 필요한 것이며, 그 아들 예수가 우리들에게 오셔서 우리들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배제한 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마치, 이 세상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려 하거나 혹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는 하나의 발판으로 삼으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전혀 무관한 삶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자신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전혀 깨달음이 없이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오늘날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를 가장 잘 믿는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성령을 통해서 자신속의 죄악을 깨닫고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삶이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죄악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서 아무에게나 자신을 낮추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짓죄인이요 거짓 회개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낮추는 사람들로서, 사람(거짓목사)들이 괜찮다고 하면 참말로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진짜로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육신의 행동으로 별의별 짓을 다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님의 말씀으로 그런 자들을 책망이라도 하게 되면, 금방 태도를 바꾸어 또 육신의 행동으로 죄인인척 하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인간이 예수를 믿고자 했을 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악을 보고 그것을 뼈 속 깊이 마음속에서 죄인이라고 깨닫지 못했을 때, 거기서 나타나는 파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은 거짓에게 속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만으로는 마귀의 속임수를 결코 벗어날 수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마귀에게 속지 않는 방법은 ‘이리 저리 보아도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자신에게 큰 소리로 선포하고 나서, 예수에게 붙는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로는 죄인이라고 해놓고 예수에게 붙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거짓이니 이것은 고단수로 마귀에게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들이 예수 믿는 것만은 방해해보려고 갖가지 묘안을 다 짜내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혹은 죄인이라고 말만 해서도 안 되고, 말을 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행동도 같이 따라 들어가야 마귀가 꼼짝하지 못하게 되며, 또 나의 자아를 마귀가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보라! 오늘날 예수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겨우 예수를 알만한 성령만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예수를 잘 알고 있고 또 예수를 잘 믿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으니, 거짓의 아비는 인간 속에서 얼마나 인간들을 주물럭거리며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여 자기의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세상에 쏟아놓고 있는가?


이제 우리 성도들은 이런 거짓에게 속지 않으려면, 자신이 절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에게 큰 소리로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외쳐야 한다. 창피할 것 없다. 창피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창피를 지킨다고 하여 그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이 아니라면 체면불구 하고 과감하게 나를 죄인으로 드러내야 한다. 자신을 죄인으로 드러낼 때 결국 그 속에 숨어있던 마귀도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반드시 예수에게 붙어야 한다. 일반교회에서야 예수가 없으니까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고도 예수에게 붙을 수없다고 하지만, 이 강단에서야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강단의 주의 종을 통해서 예수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더 주저하고 망설이겠는가? 말만하고 예수에게 붙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거짓과 더 함께 살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여기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 하루빨리 여기를 떠나야 할 것이다.


이제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했으면 왜 주님 앞에서는 떳떳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겠다. 세상이치로 보면 죄인이 어떻게 떳떳할 수가 있겠는가? 죄인이라면 얼굴 낮도 들지 못 할뿐더러 사람들이 볼세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것은 왜 그런가? 나의 죄를 대신 짊어져줄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져줄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 죄를 대신 짊어져 주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 법에나 세상 사람들에게도 꺼리 길게 없게 되는 것이다. 그가 내 죄를 대신 갚아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죄를 대신 짊어져준 분의 소유물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우리들도 영들의 세계에서 죄인이라는 것이다. 내 자신이 내속에 들어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영락없이 죽어 지옥가게 생겼는데, 내 대신 죄를 짊어져 주신분이 계셔서 지옥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 나는 지옥을 벗어났다하여 방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내가 방종한 삶을 살게 되면 이제 나는 다시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무효케 한 배은망덕의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말이다.


내가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는 길은 내 스스로 그분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분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져준 분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분의 것이니 그분의 명령에 따라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고, 예수와 하나 되어 사는 삶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가 너무너무 고맙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예수의 은혜가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미치도록 고마워서 결국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도무지 배겨내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예수 앞에서 전혀 꺼리 길게 없다. 인간은 아직도 연약에 쌓여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고, 또 죄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게 되면 솔직하게 예수 앞에 털어놓고 잘 못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잘 못되면 또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의지력을 키워나가고 어느 정도 자신이 죄를 분별할 정도의 지각이 생기면 그 지각을 사용하여 자신의 죄를 물리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모두 죄인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왜 인간들은 그것을 드러내놓지 않고 자꾸만 숨기려하는지 모르겠다. 세상 앞에서라면 몰라도 나의 죄를 대신 짊어져 주신 분 앞에서라면 천번 만번이라도 나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지긋지긋한 죄에서 자유 함을 누려야 옳은 일 아닌가? 이것이 바로 예수 믿고 죄에서 자유 함을 누리는 일인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거짓목사와 또 자신 속에 들어있는 거짓에게 속아서 너무나 힘겨운 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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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07-27 17:06
조회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