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부활의 소망

주일 낮 설교

본문: 계시록20:1-6

제목: 부활의 소망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활의 소망을 기다릴 것이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가장 절망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이 이토록 중요 하듯이, 부활에 이르는 신앙생활은 그래서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냥 교회만 다니면 부활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신앙의 초보자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명으로의 부활이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부활의 의미는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부활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면 불신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지옥에 가기 위하여 두 번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부활은 반드시 자신의 죄악 된 육신의 소욕이 죽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들이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런 자들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자들이다.


우리가 말하는 부활이라 하면, 첫째부활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첫째부활에 참여 하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이요 거룩한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도 없는 자가 부활을 하게 되면, 이것은 죄악이 부활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구약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무조건 교회만 나가서 “하나님! 예수님!”하고 이름만 부르면 그것이 곧 주님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개, 돼지처럼 살아가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이름(피)를 믿고 교회 다니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세상과 짝하지 말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었더니, 글쎄! 성령을, 아들의 영으로 착각하여 모두가 부활에 참여하게 될 줄로 알고 어서 주님께서 재림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이 나타나서 ‘나를 믿어야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예수 이름을 모독했다하여 또 죽일 것 아닌가? 이런 일은 유대인들도 그랬고, 또 오늘날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게 되면, 이렇게 인간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에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한번 잘 못 끼워진 단추는 끝까지 자기자리를 찾아갈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소위 믿는 자들이 저지르게 되는 크나큰 실수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한번 잘 못 주입된 지식은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넣고 말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예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 둘이 자라고 있다. 편의 상 바보와 똘똘이로 부르기로 하자! 바보는 말 그대로 바보다. 가르쳐주면 가르쳐 주는 것만 아는 아이다. 그런데 똘똘이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을 알고, 둘을 가르쳐주면 셋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이 점점 자라가면서 세상 지식을 배워 가는데, 바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전혀 세상 지식을 터득할 수 없는 아이다. 그러나 똘똘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얼마든지 세상 지식과 이치를 터득하여 스스로에게 적용해 가는 것이다.

그 둘이 이번에는 교회에 함께 다니게 되었다. 바보는 여기서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다. 목사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있는 아이다. 그러나 똘똘이는 목사가 한마디 하면 두 마디를 알아듣는 아이라서, 벌써 성경을 꿰뚫어 보는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교회 십년을 같이 다녔어도 똘똘이는 벌써 주일학교 교사에 중, 고등부 교사로서 활동을 하는데 비해서, 바보는 말 그대로 목사가 말한 그것밖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어른이 되어서 똘똘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한다며 목사가 되었고, 바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아직도 처음 신앙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 두사람 앞에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 아들이 나타났다. 아들은, 이 둘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천국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똘똘이는 역시 머리가 뛰어나서인지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아들역시 처음에는 어찌나 똘똘이가 재치 있게 모든 일을 잘 꾸려나가던지 흡족해 했다. 그런데 비해 바보는 여전히 하나를 가르쳐주면, 가르쳐 준 그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똘똘이는 드디어 인간본질의 모습을 슬슬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권모술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은 그런 그를 깨우쳐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한번 잘 못 박힌 못은 좀처럼 빠지질 않았다. 똘똘이는 그럴 때마다 왜! 그것이 자기 탓이냐고 울분을 토해보지만, 그 울분 자체가 벌써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억울함이란? 자신이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올린 세상지식(죄악)과 신학지식(육신)을 왜! 아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냐는 것에 대하여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더 이상 똘똘이의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며, 마귀적인 육신의 소욕을 받아줄 수가 없다. 똘똘이가 그러면 그럴수록 아들은 결국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바보는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없으니까 무엇을 가르쳐주면, 가르쳐 주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콩을 메주라 해도 믿고, 메주를 콩이라 해도 믿는 것이다. 세상에서 바라볼 때 그는 분명히 바보였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바보가 참으로 순수해 보였던 것이다. 곧이곧대로 믿는 그에게 아들은 주의 영이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려서 주의 영이 임하게 되자, 바보는 죽고 대신 아들의 영이 살게 되므로 그가 영적인 천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자 하는 부활의 모습이다.


오늘날에도 똘똘이가 같은 자들은 자기 지식(죄악) 때문에 모두 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똘똘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도 그만큼 똘똘이 자신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바보 같은 자들은 가르쳐주는 것만 알기 때문에 인간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도 바보 같은 자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세상을 바보로 살아가던 자가 오히려 악한 영에게 지배를 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보로 살아가던 자가 하나님 아들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축복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는 바보라서 누구나 알려주는 대로 믿고 따르기 때문에, 아들을 만나서도 그가 알려주는 대로 믿고 따를 것이분명하기 때문에 아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바보는 세상에서는 바보로 취급받으며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살았을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긍휼함을 입고 오히려 왕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진짜 그동안 바보의 삶을 살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차라리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바보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왕자로 취급받으며 살기를 원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똘똘이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평생을 바보로 고통속에서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을 이제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을 차라리 바보로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든것을 버리고, 바보로서 순수하게 아들이 가르치는 대로 믿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세상적인 바보는 죽고 영적인 아들로 다시 태어나서 천하를 호령하며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 천년동안 왕 노릇하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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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4-11 00:00
조회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