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고정 관념의 틀을 깨자

내가 어렸을 적, 농촌생활은 있는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나 보잘 것이 없었다. 지금의 농촌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땅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업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농촌 현실이 어려웠을까?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질 않고 조상들이 하던 방식을 따라 그대로 농사를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같은 땅에서도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일년에 몇 번씩 농작물을 수확해서 고소득을 올리다 보니 농촌 생활이 도회지 생활 못지않게 향상되어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옛날에 농사짓던 방법을 바꾸어서 현실에 맞게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데서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이처럼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게 되다보니, 세상에서도 이렇게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도 고정관념의 틀이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도 고정관념의 틀이 있듯이, 신앙생활에도 분명히 고정관념의 틀이 있다. 한번 잘못 박힌 고정관념의 틀은 자칫 자신을 죽음의 굴레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만다. 잘못된 신앙의 고정관념의 틀은 마치 똑같은 땅에서 옛 방식을 따라서 계속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농사짓는 것이나 같은 이치다. 오늘날 기성 교회들이 거의 모두다 이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체 허우적 되고 있다. 자신들 말로는 보수교단 운운하며 전통과 역사를 가진 교회라고 성도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 이면을 보게 되면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고 인간의 지식을 덧 씌어서 성도로 하여금 더 이상 밖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성도들을 교권과 교리에 묶어놓고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이미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써먹던 방법이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로 반문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들이 적이 놀라는 눈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대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전을 헐라고 했으니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나 다름없는 성전을 모독한 것이다. 그들이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성전을 건축하는데 사십 육년 동안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을 헐어버리고 단 3일 동안에 짓게 다고 했으니, 그들 눈에는 예수가 당연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향해서 계속해서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그들의 생각처럼 예수께서 전혀 틀린 말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가 아는 바로는 예수는 전혀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가 하신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구약 사람들은 큰 의미에서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가 오시기 전이므로, 그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거의가 다 천사가 사람으로 현현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은 메시아가 와서도 천사처럼 어떤 큰 이적(하늘에서 불을 끌어 내린다든지)을 행해서 고통 받는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것으로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갖고 있던 생각에 불과 할뿐이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이 땅에 나타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후로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는 아버지를 나타내신다. 
오늘날 예수 믿고, 성령 받아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고정관념은 바로 자신들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은 자신들은 구원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안일한 태도다. 이것은 예수가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도 이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데서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침례요한을 보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는 말로 유대인들이 생각을 바꿀 것을 외치게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가 예수를 배척하고 말았다. 
고정관념의 틀은 이처럼 무섭다. 오늘날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 보니, 좀처럼 그들 생각을 바꾸기를 거부한다. 
주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구원 받은 영혼들이 성령을 따라 살라고 보내 주신 것이지, 성령을 배격한 체 구원 받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으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따라 살기가 어려운 만큼, 오늘날에도 구원받은 성도라도 성령을 따라 살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주님은 그동안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들을 세워서 구원 받은 영혼들을 인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제 때가 차매,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온전한 종을 보내서, 구원받은 영혼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의 죄악을 깨끗하게 도말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 자녀로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셨다. 주님의 뜻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음성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굽히려 하지 않았던 것에서 그 실례를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에는 분명히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곱 사자를 통해서 일곱 교회를 다스리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일곱 교회를 통해서 거룩한 자, 144,000명이 나오게 될 것이며, 또한 마지막 때에 죽음의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인 맞은 이들만 환란을 겪지 않게 될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실제로 되어질 일을 기록한 것이지 상징적 해석으로 기록해 놓은 책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기성 교회들이 교권과 교리를 내세워 성령의 역사를 제한시켜 왔음을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이런 틀 속에서는 제아무리 믿음을 갖고 싶어도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고 인간의 생각을 우선시 한다면 가톨릭보다 더 낳을 게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각으로 성경을 조명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능력으로 보다 넓은 안목을 갖고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조명해 보아야 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무한한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해주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주실 것이며, 성령께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실 것이다. 성령 안에는 예수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신다. 결국 성령을 인정하는 것은 예수를 시인하는 것이고, 아버지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고정관념의 틀을 바꾸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꾼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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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8-21 19:44
조회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