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하나님 아들이 그들 땅에 들어 올 때까지는 율법 아래서 죄를 깨달으며 살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것을 가지고 법을 집행하는 집행자가 되려 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율법사나 서기관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頒布)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 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우상 숭배 하느냐?”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행동인가?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두고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네스스로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너희가 이같이 행동한바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심한모독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하나님에게 긍휼 얻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통해 적어도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선지자들의 말씀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기에 앞서서 죄 아래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낸 종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다보니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바른 말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거짓선지자들의 말 듣기를 더 좋아했던 것이다. 바른말을 해주는 참 선지자의 말 듣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 비위나 맞추는 거짓선지자의 말 듣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연히 하나님 아들을 거부하고 배척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순리에 따라 주신 법 하나를 잘못 해석하여 받아들임으로써 후 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된 교리에 따라 엉뚱한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하나를 잘못 해석하고 잘못 받아들임으로써 영생의 길에서 멀어져 가게된 것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 이방인들은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차 이야기 했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이방인들은 예수께서 피 흘려주신 것을 영원토록 감사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피 흘림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 그 증거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선지자들을 보내 주신 것처럼,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다.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숨은 죄악을 찾아내어 회개시키는 것이 그 첫째 목적이요 두 번째는 회개하고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악의 본성 때문에 자꾸만 넘어지는 자들을 붙들어 주시며, 또한 하나님이 보내시는 아들이 올 때까지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역할을 감당하시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령을 통해서 자신 속에 들은 죄악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성령의 말씀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에게 ‘성도들에게는 도적질 말라 해놓고 너는 도적질 하느냐?’ 또 ‘성도들에게는 간음하지 말라 해놓고 너는 간음하느냐?’ ‘성도들에게는 우상숭배 하지 말라 해놓고 너는 우상숭배 하느냐?’ 하는 것이다. 네 자신을 먼저 가르치고 남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 말씀을 가지고 네가 네 자신을 먼저 가르치기 보다는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냐에 대한 질책이다. 비단 이것이 지도자들에만 해당되는 말씀이겠는가? 오늘날 성령 하나님을 모신 각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씀으로,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가장 큰 목적이다. 자신부터 가르치다 보면 남을 쳐다볼 시간도 없이 먼저 자신이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진실로 느끼고 깨닫는 자는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건져주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육신적인 백성답게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아들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이방인들은 영적인 백성답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아들을 보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선지자가 너무나 중요한 일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잘 못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아들을 부인해 버렸듯이, 오늘날 이방인들에게 성령은 너무나 중요하고 고마우신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대로 활용하지 않게 되면 이방인들 역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만다. 그것은 그들이 성령을 통해서 죄악을 깨달으려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구원의 완성으로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의 본래목적을 상실한 체, 성령 받은 것을 구원의 완성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방인들은 대단히 위험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이 보내시는 아들을 이방인들도 틀림없이 배척할 것이 너무도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방인들도 별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없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보기 위해서 미력하나마 나 자신을 받쳐서라도 이방 형제들이 모두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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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05-04 22:22
조회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