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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빌립보서3:1-18

제목: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3:7-9).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자이다. 그리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던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던 자이다. 그런 자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180도 회심(回心)을 하게 되었다. 회심(回心)의 성경적 의미는 마귀와 죽은 영(귀신)’의 지배를 받고 살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마귀와 귀신의 지배를 받던 인간의 영(靈)과 혼(魂)이 성령과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사건을 두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도 성령을 받고 바울처럼 회심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받고 회심한 사건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고 회심한 사건과는 본질이 다르다. 바울의 회심(回心)과 본질이 다른 것은, 바울은 영(靈)과 혼(魂)이 성령과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영(靈)만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을 뿐, 혼(魂)은 아직도 죽은 영(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회심한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까 바울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모두 받은 사람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고 아직 그리스도 영은 받지 못한 상태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영(靈)속에 오시기 때문에 성령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인간의 영(靈)만 마귀 발아래서 나온 상태라서, 현제까지도 기독교인의 혼(魂)은 ‘죽은 영(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런 ‘죽은 영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 없다. 이 또한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진짜 회심을 경험하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이 그를 구세주로 믿고 받아 들이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게 되는데,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바울처럼 완전한 회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회심(回心)의 진정한 의미는 죄악 된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으로는 바울과 같은 완전한  회심을 경험할 수 없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사건과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 회심한 사건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 백성으로서 율법아래서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사람이었으나, 이방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불신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가 고백하고 있듯이, 자신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방인들은 불신자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출발부터가 바울과는 신분이 다르다. 그러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울이 회심하기 이전에 율법아래 살던 때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바울과 같은 회심을 경험하려면,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살았으니까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그때는 바울과 같은 회심(回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을 내던 자이다. 그가 율법아래서 얼마나 신앙생활에 열심을 냈으면, 예수 믿는 자들을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로 여기고 그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겠는가?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를 통해 돌로 처 죽이기까지 했다고 나온다. 그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일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성경에 다 기록하지 않아서 그렇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힌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던 그가 살기등등하여 공문을 가지고 그날도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내려가던 중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9:3-6).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은 그냥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사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갔다는 말이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사람속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예수도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 공중재림에 앞서서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때도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시는데, 그때도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를 관가해서는 안 된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강렬한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되자, 예수께서 성으로 들어가 아나니아 제자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눈이 먼 사울이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성에 들어가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를 받자,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사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아나니아가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9:17,18).

 

그러니까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영을 먼저 받게 되었고, 성에 들어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 살을 먼저 먹고, 예수 피를 나중에 마시게 되는데, 그것이 성령을 마지막에 받는 과정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반대로 예수 피를 먼저 마시고, 그 은혜로 성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살을 먹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토록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이미 열두 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장차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시겠다는 하나의 예표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난후에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가서 하실 일들을 미리 바울을 통해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 후 기독교인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셔서 바울을 통해 예표로 보여주었던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가장 먼저 했던 말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율법아래서 살 때는 자신의 죄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고 보니, 비로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자신의 죄인됨을 자랑하나,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자신의 의인(구원)됨을 자랑한다. 이때 자신의 의인 됨을 자랑하는 자는 엄밀히 말해 구원 받지 못한 자이고, 자신의 죄인 됨을 자랑하는 자가 구원 받은 자요.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만 자랑할 뿐,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빛을 비춰주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알 수 없다. 그리고 성령은 인간의 영(靈)속에 오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것만 자랑하고 있다. 아직도 자기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한데, 구원 받았다고 자랑하는 자는 화약을 짊어지고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기전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이단이라며 핍박하고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했을 때, 그는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자신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다 옥에 가두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자신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여기고 죽이려 들 것이다.

 

물론 귀신의 가르침을 쫓아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단들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이라면 백번아니라 천 번이라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일반 교인들로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분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바울처럼 반드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는 자 즉, 구원 받지 못한자는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만 자랑한다. 이런 자는 사단의 하수인으로 쓰임 받는 자들이다. 

 

오늘날 남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남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특성을 따라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와 귀신들은 항상 자신을 들어내서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게 때문이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이 세상으로 쫓겨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있는 자는 절대 남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남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모신 자의 특성이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일들을 보면, 그가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죄가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런 예수께서 부활의 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우리 또한 예수의 특성대로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자는 남을 헐뜯거나, 남을 비방하거나, 남의 것을 탈취하거나, 세상 것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특성이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은 받았지만,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는 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귀의 특성을 따라 남을 헐뜯고, 정죄하고, 비판하며, 끊임없이 세상 것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자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며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죽은 영(귀신)’에게 붙들려 살기 때문에,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서 탐욕과 탐심이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런 자들을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인들은 영문도 모른 체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 죽음의 길로 가고 있다. 그래서 목사들이 마지막 날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바울이 말하는 바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스스로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만약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너희는 버리운 자라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말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서는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말대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서, 만약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기독교인들은 세상 것을 붙잡려고 발버둥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남을 헐뜯거나, 남을 비방하거나, 남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불신자보다도 더 남을 비방하고, 더 남을 정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다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불신자보다도 더 혈안이 되어 있다. 


만약 그들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저런 행동을 하고 있다면, 누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삶이 불신자의 그것과 하나 다를 것이 없는데, 과연 이런 자들을 두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을 보면 사단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불신자처럼 살고 있을지라도, 바울과 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면, 기독교인들도 180도 회심(回心)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9:7-9). 어쩌면 바울보다 더한 고백도 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보다 훨씬 죄가 많기 때문이다.  

 

바울 말처럼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면,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원수 되는 짓만 하였던가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바울역시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후에야 비로소 그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이 그동안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말씀이지만, 기독교인들도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그때는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구구절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을 서슴없이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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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2-01-30 00:00
조회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