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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6:22-40

제목: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8-29).

 

오늘날 무슨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일까? 신앙생활을 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이라 하여, 어떤 사람은 한주도 거르지 않고 주일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드리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1원 한 장까지도 계산해서 드리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사회생활이 바빠도 수요예배와 금요철야 예배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는 사람도 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의 일이라 하여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는 이것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기뻐 받지 않으신다그 이유는 인간의 이런 행위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 그들 내면에는 자신의 수고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따라서 이런 행위는 하면 할수록 도리어 자기 의(義)만 쌓게 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런 행위를 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생각속에서 나온 행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라, 마음도 없이 하는 이런 행위들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미가서 6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7,8).

 

위 내용을 직역하면 하나님은 천 마리의 숫양이나 만 마리의 황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도 그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도, 마음도 없이 형식에 의해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이며, 생각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인가?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마음속에 죄가 없는 사람이 드리는 예배이고, 생각으로 드리는 예배는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한 체 생각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에 마음속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중에는 죄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인간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중에서 죄 없는 분이 딱 한분 계신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셔서 드리는 예배라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영으로 계시기 때문이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는 본래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180도 회심하게 되었다. 바울이 회심하게 되었다는 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 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자, 바울이 그동안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바울을 회심시켜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줘서 성령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하지만, 백성은 아직도 죄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백성의 신분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은 아들들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백성에서 아들로 신분이 바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에에 따라 백성들의 숫자가 땅에서 모래알 만큼 많이 불어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앞에 당신의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보내서 천국에 들어갈 자들을 백성 가운데서 골라내는 작업을 하신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성령만 받아서는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은 영생에 이를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셔서 드리는 예배라야,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소와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 역시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한 상태에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를 기뻐 받지 않으셨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한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까?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태어나자마자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율법아래 갇히고 말았다. 율법아래 갇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기뻐 받지 안했다. 소와 양의 피가 인간의 죄를 도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인간이 드리는 제사를 기뻐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아래 갇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유대교 이천년 역시 마지막에 유대인들 앞에 하나님 아들(예수)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하기를 즐겨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진노의 잔을 쏟으셨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공로 때문이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태어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를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하고 타락의 길로 가게 된다.

 

그리하여 현제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히고 말았다. 성령의 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많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형식에 의해서 드리는 예배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영적인 아들)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유대인들처럼 계속해서 성전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를 즐겨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죄악 가운데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바로 나갈 수가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 앞에 각각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린 그것으로 죄가 도말되었다고 믿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으로 드린 예배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마지막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율법과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는 순간! 사단의 올무에 걸려 들고 말게 된다. 예수님 당시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바리새인들이 많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성령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 부지수로 많다. 이들은 모두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살고 있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위 말씀을 직역하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보내신 자! 즉, 하나님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구세주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다시 기독교인들 앞에 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를 구세주로 보내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보낸 자(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원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던 것과 같다.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예표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장차 이스라엘 땅에 오실 예수를 예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로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예수를 유대인들 앞에 보내주셨고, 예수께서는 또다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를 기독교인들 앞에 구세주로 보내주셨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도 그런 제사를 통해서는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가 보내주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를 믿지 아니하면,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많은 예배를 드려도 그런 예배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인들이 주님께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그리스도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예수가 보낸 자를 믿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이니라!” 말씀하시고 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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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2-02-13 00:00
조회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