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후서13:1-13

제목: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바울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확인하라고 하는 말은, ‘너희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지 확인해보라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입술로 예수 이름을 부르는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믿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믿는 것이라서 ‘믿음이 아니다. 이방인들은 왜 마음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이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마음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고 생각으로만 믿는 것이다. 생각으로 믿는다는 말은, 입으로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신 것을 두고 믿음이라 말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 자에서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다. 그런데 고린도인들이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듣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는데, 성령을 받자 그들도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며 교만해지자, 바울이 화가나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인”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방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이방인들은 성령만 받아서는 온전한믿음”에 이를 수 없고, 바울처럼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이 믿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영을 받은 후, 그리스도의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되었을 때, 다메섹 성에 들어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아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성령도 받고 ‘그리스도 영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이제 겨우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마음이 높아져 교만이 하늘을 짜르자, 바울이 화가나서 너희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신가 확인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고린도인들은 이방인이다. 그들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그러자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도 유대인들처럼 구원 받았다며 모두가 호들갑을 떨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린도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모르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라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당장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모르고 구원 받았다며 날뛰니까 바울 입장에서는 화도 나고 몹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들이 당장 구원에 이를 수 없었던 것은, 그들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죽은 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아도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죄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 마음속에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들어 오셔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주셔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고린도인들이 구원 받았다며 좋아했던 것이다. 이방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음속의 죄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는 구원 받았다며 좋아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인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없다보니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며 좋아했던 것이다. 이에 화가 난  바울이 오늘 본분 말씀처럼 그들을 책망하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고린도 교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여러 지역에서 이런 현상들이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바울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다녔던 것은, 이방인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서 성령을 받게 한 다음, 하나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이유가 비로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삼기 위해서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바울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 모형으로 쓰임 받았던 자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지만, 이방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서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이제 겨우 성령을 받은 하나님 백성에 불과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니까 바울이 몹시 걱정이 되어 책망을 했던 것이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이방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죄사함을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고전13장을 보면, 바울이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구분해 놓고 있는데, 이는 이방인들이 성령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그리스도가)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은사가)이 있을찌라도 사랑(그리스도가)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13:1,2).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이방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고 또한 하늘의 비밀과 성경에 대한 지식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본인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유익에 없다는 말은, 이런 능력을 나타내던 자라도 본인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영생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참고로,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얼마든지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이 그 장본인이다.

 

그리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그리스도가)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그리스도는)은 오래 참고 사랑(그리스도는)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그리스도는)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2-7). 위와 같은 일을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실천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울처럼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신 자는 얼마든지 위와 같은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사랑(그리스도는)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은사)도 폐하고 방언(은사)도 그치고 지식(은사)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성령의 은사) 부분적으로 예언하니(성령의 은사), 온전한 것(그리스도)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성령의 은사들)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8-11).


당시 고린도 교인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진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그동안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은 모두 폐하여지게 된다. 좋은 예로, 아파트 시공업체가 아파트를 분양하기 위해서는 모델하우스를 먼지 짓게 된다. 그러나 아파트가 완성되고 나면 모델하우스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 허물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도 모델하우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그동안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영생에 이를 수 있다. 바울이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들을 그리스도를 만난 후 모두 배설물로 여겼다고 하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끝으로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실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실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은사), 소망(은사), 사랑(그리스도),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그리스도)이라!”(고전13:12,13).

 

바울은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기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울을 흉내 낼 수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바울처럼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 받은 것으로는 아무리 바울을 흉내 내려 해도 바울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 영(靈)속에 오신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영적인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모두가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바울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서 성령을 받게 한 다음,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삼기 위해서다. 먼저 백성이 만들어져야 그들 속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도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그 아래서 이천년을 살게 하셨다. 그런 다음 성령을 거역하여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당신의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사역을 펼쳤던 것은,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셔서,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을, 바울을 통해 미리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장차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로 쓰임 받았던 것이다. 결국 바울 또한 실체가 아니라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말씀을 먼저 하신 후에 그것을 후에 이루어 가신다. 같은 맥락에서 이삭이 장차 유대인들 앞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었다면, 야곱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바울을 이방인들 앞에 먼저 보내서,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실 일들을 미리 바울을 통해 재현해보게 하신 것이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율법(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 

 

바울은 오늘날에도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이 묻고 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분명한 사실은 본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 자는 죄 사함을 받은 자요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아직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이다.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영생에 이르겠지만,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는 영벌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 

 

혹시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착각 하는 자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하나님 영이라서, 하나님 영(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절대 오실 수가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법칙이라서 누구도 이를 변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인 성령께서는 지성소에 해당하는 인간의 영(靈)속에 오시게 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靈)은 성소에 해당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게 된다. 이와 같은 위계질서는 이 세상이 다 망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를 변개시키거나 무용지물로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마귀 발아래서 나왔다는 증거로 성령은 받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도말시켜주셔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의 영()과 혼()이 마귀와 귀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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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2-02-06 00: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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