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일 낮 설교

본문: 누가복음18:35-43

제목: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유월절을 맞이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데,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한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소경은 사람들에게‘무슨 일로 이렇게 사람들이 웅성거리느냐?’고 묻자 옆에 있던 사람이 지금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자, 소경은 마치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고 말하고 있다.


이 소경은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고, 여리고 길목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구걸하던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팽개치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큰 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당시 이 소경이 이렇게 용기 있게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확고부동한 의지 즉, 예수가 메시아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이 믿음을 갖기까지에는 자신의 적지 않은 자기 성찰이 필요 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 즉 앞을 볼 수없는 소경이라는 점이다. 그는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수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을 것이고, 또 속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눈물을 흘리며 보냈겠는가? 자신만이 아는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그는 속으로 더욱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육체가 멀쩡한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메시아가 오면 사막에서 물이 솟아나듯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을 믿어 왔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공교롭게도 자신들이 로마의 압제아래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일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그들은 더욱더 메시아를 기다리게 되었고, 또 메시아가 하루빨리 오셔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또 로마군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물러가게 해서 자신들이 이방인들의 손에서 완전히 해방 받는 것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침례요한의 ‘광야의 외치는 소리’와 함께 메시아라는 자가 나타났는데, 그가 하고 다니는 행동을 보아하니,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 하고는 영 딴판인지라 기대와 실망이 뒤섞인 체, 그들 중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반신반의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자를 살리고, 눈 먼 자를 고치는 것을 보면 메시아가 분명히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그가 또 죄인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율법을 제대로 모르는 것으로 보아서 선지자 정도도 안 되는 것 같고, 알쏭달쏭한 그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들은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것은 그의 행적이 어찌 되었던 간에 로마군들만 쫓아내 주기만 하면 메시아로 인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로마군을 몰아내겠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둥,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이라는 둥, 하면서 자신들을 비난하고 나서자, 저 것은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의 원수라고 여기고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이런 갈등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어떤 부류는 그가 메시아일 것이다. 하면 또 다른 부류들은 아니다 그는 가짜 메시아다. 이런 극한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메시아일 것이다 아니다’를 놓고 이스라엘 전채가 한바탕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이소경은 눈을 못 보는 관계로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스라엘에 들어와 있는 로마군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가 훨씬 더 시급했던 것이다. 자신이 지금 당장 눈앞을 못 보고 있는데, 눈이 보여야 무엇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당장 눈앞이 안보이니 육체가 멀쩡한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로마군은 이 소경에게는 자신의 일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경은 소문에 듣자하니 메시아라는 자가 오셨다고 하는데, 그가 하고 다니시는 일을 듣자하니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눈 먼 자를 보게 하며, 문둥병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다니시는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그가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기로 한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소경은 그때부터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사막에서 물이 솟듯이’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을 굳게 믿고, 그때부터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 예수가 지나 갈만한 길목은 모조리 지키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자신을 나타내 주신다고 했듯이, 오늘도 소경은 앉아서 구걸은 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구걸이 목적이 아니라 유월절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여리고 길목을 통과하게 될 터인데, 혹시 예수라는 그분도 이 길목을 통과 할 수 있겠다 라는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을 갖고 구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하고 물어보니,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이 소경은 생에 처음이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기회를 놓칠 수없어서 목이 터져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큰 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앞서 가던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 하라 말했지만, 이 소경의 메시아를 향한 불타는 마음은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가로 막으면 가로 막을수록 소경은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고 외쳤을 테니까 말이다.


예수께서는 처음 한 두 번은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음을 아시고 그냥 두고 보시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의 마음을 테스트하기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예수를 애절하게 불러대는 죄인을 주님은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결국 소경은 메시아를 만나 자신이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모든 일을 해결 받았고, 또 끝까지 예수를 믿어 영생까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동행 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이 소경처럼 애절함이 없던 수많은 육체가 멀쩡한 사람들은 예수를 여전히 자신들의 육신의 영달을 편안케 해주실 분으로만 알고 있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자 모조리 줄행랑을 치고 말지 않았던가?


오늘날에도 자신의 처지를 바로 깨닫지 못하게 되면 모두가 천국을 눈앞에 두고도 못 들어가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강단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이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게 되면 정말 구경꾼이 되어 남들이 가는 천국을 구경만 하고 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소경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내 처지를 바라보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훨씬 자신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바로 깨닫지 못 하게 되면 맨 날 남의 떡만 처다 보다가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08-10 17:06
조회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