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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어두움을 버리고 빛을 믿으라.

제목: 어두움을 버리고 빛을 믿으라.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4,5)”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씀하는 빛은 선을 나타내는 말이며, 어두움은 악을 뜻하는 말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 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지만,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할 인간이 어두움의 주관자의 꾐에 넘어가 그만 어두움의 주관자의 하수인이 되어서 그 밑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건져 내 주시기 위하여, 먼저 빛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어두움의 주관자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도록 하셔서 그 머리를 깨뜨리셨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임금은 임금의 자리를 박탈당했다. 이 세상 임금이 불법을 저지르고 그 보좌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그동안 어두움에 속아서 살아가던 인간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제 이 세상 어느 누구든지 빛의 아들을 믿기만 하면 어둠 속에서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빛의 아들을 보내 주시기에 앞서서 손으로 켜는 등불을 먼저 보내서 참 빛에 대하여 증거 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여기서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먼저 손으로 켜는 등불을 보내주신 것은 그 등불을 보고서 더 좋고 온전한 참 빛을 기다리고 하신 것인데, 인간들 모두가 손으로 켜는 등불을 보고서 모두가 그것이 좋다고 거기에만 매달려 있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켜는 등불은 몸 밖에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보내졌다. 이 등불은 인간의 몸속을 환하게 비춰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등불로는 몸 밖으로 드러난 몸뚱이는 비춰 줄 수 있지만 몸속에 들어있는 죄악은 찾아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몸 밖을 비추는 이 등불아래 머물기를 바랐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먼저 등불을 보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빛을 보내 주었지만, 누구도 이 참 빛을 보고 좋아하지도 않았고 또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참 빛에 대하여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얼핏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들에 관하여 잘 몰라서 아들을 믿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몰라서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실상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혹시나 빛 앞에서 자기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바서’믿지 안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예수 믿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먼저 보내주신 것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먼저 알게 하시고, 또 성령을 통해서 그 아들에 관하여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겉만 비추는 등불을 보고 속은 씻으려고 하지 안했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므로 자칫 속아 넘어가기가 쉽다. 성령께서 오셔서 비추는 빛은 인간의 영속에 오셔서 그곳만 비추고 계시기 때문에, 이방인들 생각에는,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까지 비추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가 바로 예언하는 자들이나 은사 자들이다. 오늘날 뭐 좀 안다고 하는 자들이나, 혹은 자기가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이부분인데,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생각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가지고 소위 예언이랍시고 전혀 앞뒤도 안 맞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성령께서 말씀 하셨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께서 하신 말씀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그것을 기초로 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에 결코 성경을 초월하여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그들이 지껄이는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악한 영들이 꾸며낸 말이거나 아니면 겨우 자기 생각들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도 그것이 잘못되지 않으려면 내 안에 참 빛이 비추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영이 성령의 조명을 받듯이, 인간의 마음 또한 참 빛이신 예수의 조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전적으로 부패된 인간의 영과 혼이 성령으로 영의 한쪽부분만 조명을 받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으로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훨씬 더 부패된 인간의 마음이 참 빛의 조명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무슨 말을 한들 그것이 결코 올바른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약20억이나 된다. 이들 모두가 자신들을 스스로 하나님 자녀라고 부른다. 하나님 자녀라면 그 속에 어두움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 어두움이 없으려면 그 안에 반드시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모두들 성령을 받아서 아버지라고는 부르는데, 그 안에 빛이 없다. 빛이 없다는 말은 옛 생활의 어두움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그들을 과연 하나님 자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불러다가 참 빛 앞에 세워 보았다. 그런데 빛의 자녀라면서 그들은 참 빛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계속해서 감추려 들더라는 것이다.


‘진리는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이 말은 자신이 진짜로 빛의 자녀라면 당연히 그 빛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 빛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거짓 자녀는 참 빛이 결코 나타나지 않을 걸로 예상하고 말로만 하나님 자녀라고 떠버리고 다니다가, 막상 참 빛이 와서 그 앞을 비추게 되니 오히려 자기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 까바 숨어 버리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악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도 선한 쪽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은 사실대로 자신이 거짓을 좋아했고,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지난날을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빛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선한 행위다.


오늘 우리성도들은 지난날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혹은 어떤 과거가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 전혀 묻지 않는다. 그동안 본인이 잘 몰라서 신앙생활을 잘 못했던, 알고도 게을러서 하지 않았던 그런 것을 이 시점에서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 속에 빛은 없고 어두움만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또한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종을 통해서 그동안 참 빛이 무엇인지 여러분들만큼은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져본 것처럼 확실히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들께서 계속해서 자신의 어두움을 따라서 그대로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그 어두움을 버리고 빛을 따라 갈 것인지 결단하라는 것이다. 오직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서 주님께서도 여러분들을 의의 길로 혹은 악의 길로 인도하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제는 여러분들 모두가 그 어떤 말로도 핑계나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악을 좋아하고 있는지, 선을 좋아하고 있는지 이제는 여러분들께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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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09-14 19:19
조회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