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생각지 않은 때에 人子가 오리라!

주일 낮 설교

본문: 마태복음24:32-51

제목: 생각지 않은 때에 人子가 오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나가서 소 잡고, 양을 잡아 피와 함께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예로 알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 외에는 달리 하나님을 섬기는 예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그들 머릿속을 꽉 체우고 있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 같이 메시아가 오시겠다는 예언을 하고 있었고, 또 구약성경에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의 모습은 그들 생각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이, 현재는 로마의 억압아래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현실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는 그들 땅에 오셔서 그들의 생각과는 전현 딴판으로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로마에 대하여는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 그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예수에 대하여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법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감추어 두신 것만은 아니다. 율법 아래서 살던 그들에게는 신앙생활 자체가 모든 것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루어져가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믿도록 하시기 위하여 계속해서 이적과 표적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표적을 본 많은 백성들은 사람에게 그런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면서도 정작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으려 고는 하지 안했다. 율법으로는 즉 짐승의 피로는 어느 것도 온전케 할 수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았어야 했었다. 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다보니까 메시아가 자신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시려 오시는 분인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율법 아래서 살아온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율법의 완성 자이신 예수만 믿고 받아들이면 마침내 율법의 마침표를 찍고, 곧바로 영생에 이를 수 있었지만, 자신들 사상(율법)에 너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그들에게는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일이 여간 쉽지 안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런 사상 속에서 살다가 주님의 은혜로 예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얼마나 감사하며 감격 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 즉 하나님께서 그들 곁에 직접 나타나셨지만, 그들 역시 세상 쾌락과 향락에 눈이 어두워져 있어서, 그들에게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단 괴수로만 보였던 것이다. 실은 자신들이 이단 괴수이면서 말이다.


이제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살펴보았고, 이제 우리 이방인들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예수의 피 흘림이 없었다면 이방인들은 어느 누구라도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굳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는 예수의 피 흘림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믿는 이방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예수의 피 흘림의 은혜를 일차적으로 입은 사람들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믿는 이방인들에게는 은혜의 선물로 하나님께서 성령까지 보내 주셨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개, 돼지처럼 살아가던 이방인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요 감사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방인들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축복만 누리려 했지, 그 다음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또 감히 상상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이 억압받던 로마로부터 모두 해방될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이방인들도 자신들은 예수 믿고 성령까지 받았으니까 모두 온전케 된 줄로 알고 재림하시는 예수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현재의 이방인들은 온전케 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는 형편인데, 만약 예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이방인들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 현재 이방인들에게나 이런 사실들이 모두 비밀들로 되어있기 때문에 아들 이외에는 이런 사실들을 일반 백성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께서는 재림하시기에 앞서서, 그러니까 현재의 이방인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말씀 하신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재림하시기에 앞서서 도적같이, 다시 말해서 이 세상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오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비밀을 맡은 자 외에는 누가 그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오시는 이유는 이방인들이 성령 아래서 그동안 어떻게 신앙생활 했느냐 하는 것을 묻는 동시에 또 본인이 주를 얼마만큼 사모하고 있었느냐 하는 물음도 되는 것이다.


현재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예수가 오셨을 당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신앙의 공백상태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이방인들 역시 예수가 재림하시면, 자신들을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 가실 줄을 철썩 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발아래 놓여 있을 때, 메시아를 기다리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재림에 앞서서 영적으로 도적같이 오셔서 이방인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또 성령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아온 지난나날들을 책망하실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재림만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 앞에 예수께서 당신의 종을 앞세워, 그동안 잘 못해온 신앙생활을 책망하시고, 외식에 치우쳤던 것들을 책망하신다면 어느 누가 그 소리를 듣고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일 것이며, 또 어느 누가 그 소리를 듣고  회개하려 하겠는가? 그렇게 말하는 자를 오히려 이단괴수라 하여 죽이려고 날마다 벼르고 벼를 것 아닌가? 이렇게 되면 예수는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실텐데 아니러니 한것은, 불신자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는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가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듯이, 예수가 보낸 종 역시 바른 소리를 한다고 이방인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을 지라도 예수께서는 그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나 그를 욕하며, 비방하고 때리며, 믿지 안했던 자들과 그를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일에 가담했던 모든 자들은 이 땅에서도 저주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하며, 또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예수가 보내시는 종이 나타날 때가 마지막 구원의 기회이다. 오늘날 성령의 능력으로 아무리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는다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에 국한된 일이지 그것으로 영혼이 구원되지는 않는다. 이방인들은 알다시피 영적인 백성들답게 속이 온전케 되어야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 육신이 아무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지라도 속이 온전치 못하게 되면 그는 구원하고 거리가 멀다. 속이 온전케 되려면 예수께서 그 속에 좌정하셔야 하는데, 아버지 곁으로 가셨던 그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예수께서 분명히 이방인 가운데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인데, 그때 어떻게 오시는가 하면 영적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이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人子가 오리라!’ 이 말씀은 영적으로 오시되 인자의 모습으로 오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이미 부활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죄인들 속에는 직접오실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인자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당신의 종을 통해서 오시겠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겉은 人子 사람의 모습이되 속은 예수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 가운데 다시 오시는 예수의 영적인 모습이다. 아버지께서도 바로 이렇게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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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09-28 19:21
조회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