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왕자가 어렸을 적에는 신하로부터 학문과 지혜를 배우고, 또 궁궐의 법도를 잘 아는 신하로부터 모든 궁중 법도를 익히게 된다. 그가 왕자라도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가 장차 임금이 되어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왕자라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지금 당장은 왕자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선생으로서 왕자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도 그는 여전히 종의 신분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그가 아직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어린아이라도 그는 장차 왕이 될 신분이므로 종의 신분과는 같지 않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몽학선생이다. 왕자를 가르치던 선생은 계속해서 또 다른 왕자를 가르쳐 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자는 어렸을 때에만 몽학선생에게 배웠지, 자라서 왕이 대고 나서는 자신이 곧 그 나라의 주인이요 말씀이 곧 법이기 때문에 자신을 가르치던 몽학선생마저 이제는 왕의 명령을 들어야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몽학선생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자신이 왕자를 가르쳤다고 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아니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고 하면 그는 스스로 자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왕자를 가르칠 수 있는 직책을 맡겨 주신 것에 대하여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라면 그는 오랫동안 그 직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과 아들의 신분의 차이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율법아래 살게 하신 것은 모두들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아들을 모두 믿어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아들의 신분을 얻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들이 만약 아들의 신분을 얻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평생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의 신분이란 죄의 종을 말하는 것이므로, 죄의 종은 주님께서 요한복음 8:35에서 말씀하셨듯이 영원히 아버지 집에 거할 수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도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에 공생에 3년 동안 자기 민족 자기 백성들을 종의 신분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 그토록 바쁘게 움직이시며, 많은 말씀들을 그들에게 들려 주셨지만,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한 그들은 끝내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믿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많은 사람들이 결국 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이제 이런 일은 현재 예수를 믿고 있다는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재현이 될 것이다. 현재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아직은 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현재 성령을 받아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기 때문에 종의 신분에서 벗어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현재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아직도 죄 아래서 살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 할 수없을 것이다. 단지 이방인들이 죄악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죄(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만을 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몸 밖에서 잘 다스리면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정작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미움,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은 죄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죄보다도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죄가 더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방인들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겉으로 드러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에다만 초점을 맞추려하는 것은 마음속의 죄를 감추려하는 마귀의 고도의 술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보면, 어느 누구도 겉으로 드러난 죄(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사람 마음속에 숨은 죄악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을 못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모두 아직은 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종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의 문제를 내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속담에 ‘나를 알고 적을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듯이, 내가 나를 잘 알고 있고, 적을 잘 알고 있다면 그 싸움은 해보나 마나다. 그것은 적이 어린애처럼 약하다는 것을 알면 그 싸움은 이미 내가 이긴 것이요 적이 어른처럼 힘이 세고 강하다는 것을 알면 내가 굳이 그 싸움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내가 나를 알고 적과 싸우듯이, 신앙생활에서도 먼저 나를 잘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를 잘 알게 되면 내가 왜? 아들을 믿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게 되면 내가 왜? 그 아들을 믿어야 하는지 아무 영문도 모른체 남들이 믿으니까 그저 좋은가보다 하고 따라서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십중팔구 얼마 못가서 넘어지게 되거나 나중에 반드시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종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내 자유의지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심어주시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우리의 자신을 깨닫고 그런 후 우리의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알려주시고 또 알려 주시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 쪽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이 천지를 개벽할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 할지라도 결코 반응하지 않는 인간에게 사랑을 쏟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제일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언제나 인간은 가만히 있어야 하고 하나님 쪽에서 모든 걸 다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얼마나 게으르고 악한 생각인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 멋대로 살면서 하나님 쪽에서만 다해주시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요 스스로 하나님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의 신분과 아들의 신분을 비교하여 살펴보면서, 종의 신분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가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망각하고 아직도 나 자신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내가 왜? 아들을 믿어야 하는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아들의 신분 얻기를 포기한자 일 것 이이다. 이곳은 종의 신분을 얻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종은 신분은 눈만 밖으로 돌리면 얼마든지 여러분들 눈앞에 펼쳐져 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이곳은 영적으로 오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종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아들의 신분을 얻기 위해서 마련된 곳이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아들의 영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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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10-26 19:24
조회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