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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거역하지 말라!

주일 낮 설교

본문: 베드로전서3:1-12

제목: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거역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 가운데서 인간이 태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창조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 섭리가 들어 있다. 만물이라도 그 창조 섭리를 거스르게 되면 모두 전멸을 당할 수밖에 없고, 인간들이라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역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가차 없이 심판을 자행하신다.


인간의 탄생과정을 보면 먼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다 남자인 아담을 흙으로 빚어서 사방의 생기를 불어 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여 인간이 되게 하셨다. 그 후 남자혼자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로 만들어 남자에게 돕는 배필로 주시니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인간이 필요 하셨고, 그 필요에 따라서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가 바로 아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과 달리 피조 된 세계에서 살다보니 혼자 독처 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그에게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게 되었는데, 그녀를 흙으로 따로 만든 것이 아니고, 남자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의 한 부분을 취해서 만들었으므로 남자에게 속한 남자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섭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굳이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여자를 흙으로 다시 만들 수 있었겠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자를 별도로 만들어서 남자에게 주었다면, 여자도 한 인격체로 지음 받은 것이 되기 때문에, 남자에게 귀속되어서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또한 그렇게 되다보면 부부가 되어서도 항상 하나가 되지 못하고 언제나 별개의 인격체로서 각각 따로 따로 생활을 하게 되어, 남자 역시 여자를 깊이 사랑할 수 없을 것이고, 여자 또한 남자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 남자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남자 여자를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남여가 각각 따로따로 놀고 있는데, 만약에 남자, 여자를 각각 따로 따로 만들어 놓았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진행되었겠는가?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하여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 속에서 나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뱀의 꾐에 넘어가 아담까지 범죄 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인간의 마음속에 각각의 악한영이 도사리고 있다보니, 각각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겨우 겉으로만 하나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을 뿐, 그 마음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날마다 자기의 유익을 찾아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또 가정생활은 어떠한가? 엄연히 서로를 사랑해 주어야 할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할 뿐, 속으로는 여전히 미워하고, 시기하고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섭리해주신 창조질서가 깨져가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영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부부의 결혼생활을 깨는 이혼이다. 이혼의 결정적 증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진다고 말한다. 물론 남편의 폭력 때문에 혹은 남자의 외도 때문에, 또는 여자의 외도 때문에 란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더라도 부부가 마음으로 어느 정도만 서로를 사랑한다면 모든 문제는 그 안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가 있다. 사랑하는데 폭력을 휘두르고, 맞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간의 실수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외도를 일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설사 정말로 육신으로라도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남자의 외도까지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정이 깨는 아픔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여자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부분이 바로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느 여자 분은 ‘아니! 무슨 여자들이 남자들의 노리게 감이오?’ ‘여자들도 한 인격을 가진 엄연한 인간이오?’하면서 반문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요즘 세상, 특히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게 바라본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여자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여자들은 남자들 갈빗대로 만들었으니까 무조건 남자들 뒷바라지나 하고, 남자들 그늘아래서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여자의 진정한 행복은 남자의 품속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남자를 통해서 참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여자가 이것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없다. 혼자 사는 여자가, 돈이 많다고 행복해 보일 것 같지만, 그것은 사람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실지로는 절대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품속에 들어갔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말은 비단 여자에게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거기에는 남자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남자가 자기 짝을 찾아 마음과 가정이 안정되게 되면 남자는 힘을 얻게 된다. 따라서 남자는 마음이 뿌듯함을 얻게 되면 세상 두려 울게 없어진다. 그럴 때 남자는 한없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남자는 그 행복감을 남자 혼자만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그 행복감을 남자는 바로 자기 아내와 자식에게 쏟게 되는 것이다. 여자가 진정한 마음으로 남자에게 받는 사랑, 이것이야 말로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없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도 돈 많고, 많이 배우고, 얼굴이 예쁘다고 하는 여자들이 바로 이런 사랑을 원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 그것은 남자도 여자의 사랑을 먹고서야 비로소 받은만큼 사랑을 내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콧대높은 여자들이 자기를 희생하려 하지 않고, 모두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짓은 콧대가 높은 여자일 수록 자기만을 사랑해 달라고 하고 있지만, 이 세상 어떤 남자라도 죄를 먹고 마시고 있는 이상 사랑을 먼저 받지 않고, 사랑을 먼저 베풀어 줄 수있는 사람은 없기 떼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자, 여자를 창조하신 섭리에 따라서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 사랑해 줄 수 있는 있는 ‘이런 남자 어디 없나!’ 하고 찾아다녀 보지만 결국은 돈과 명예를 좇아서 남자를 만났다가 끝에 가서는, 이 남자도 결국 자기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도 남자에게 꿀릴 것 없다하여 외도를 일삼다가, 그 일이 결국 남자에게 알려져서 끝내는 파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나를 먼저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없다는 결론이다. 그럼 나를 어떻게 희생시킬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고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셨듯이, 우리 여자들도 나 하나가 희생하고서 남편을 구하고, 가정을 구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여자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도 하와가 뱀의 꾐에 넘어간 사실 때문에, 죄가 남자보다도 배나 더 중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33일간의 산후조리를 하게 했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66일간이나 산후조리를 하게 한 것은 그만큼 여자가 태어날 때 죄악의 고통도 심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자들이 이런 사실만 제대로 본인들이 깨닫고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남편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창조섭리로 볼 때, 어느 곳에라도 기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에게 애정 즉, 모성애적인 사랑을 보이는 여자에게 자신을 맡기고 싶어 한다. 그리고 쉬고 싶어 한다. 엄마 같은 모성애 같은 품속에서 쉬고 난 남자들은 세상에 나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아내들이 해주어야 하는데도, 여자들은 도리어 남편에게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하고 있거나, 아니면 속으로 미워하고 있으니,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통해서 엄마의 품속 같은 따뜻한 모성애를 느껴보려고 찾아왔다가, 퇴짜를 맞게 되니 남자는 그때부터 방황을 하게 되고, 그 방황은 다른 여자를 찾아가서 하루 밤 풋사랑이라도 나누어 보면서 자신을 달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내를 향한 복수의 칼날로 변해서 날마다 술을 먹고 아내를 두들겨 패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까지도 모두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결국 여자가 자기 자신 하나를 희생하지 못해서 벌어진 결과이다. 이것이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희생 즉,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우리가 이것을 배웠으니 이제라도 내가 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희생시켜야 하겠다. 그리고 남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강한 것 같아도 그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순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다. 이런 어린아이 같은 남편들을 우리 여자들이 엄마의 모성애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모두 덮썩 끌어안고 사랑해 버리자는 것이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데, 왜 남편의 눈치를 살펴야 하겠는가?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데, 남편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왜 그를 가만 두고만 보려는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호통이라도 쳐서 바른길을 가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데 무엇이 두려울 게 있다는 말인가? 모두 다 잘 되자고 하는 일 아닌가? 여러분들이 자식을 사랑하니까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사정없이 야단을 치면서도, 왜 남편들에게는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여자들이 진정으로 남편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호통을 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여자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절반만 가지고 있어도 남편들이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해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여자들은 예수의 희생을 본받아서 자신이 더욱더 죄인임을 자각하고, 남편들을 자식 사랑하는 마음 절반만이라도 사랑해 주기 바란다. 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쏟을 때, 비로소 남편도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줄 것이다. 그렇게 받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며, 또 이렇게 가정에서 남편을 사랑하는 자들이 교회에 와서도 영적으로 주님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 또한 이런 자들을 진정한 당신의 영적인 아내로 맞이하여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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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3-11-30 20:23
조회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