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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믿는 자만이 주의 영광을 보리라!

신년 축복 설교

본문:  요한복음 12 : 44 - 50

제목: 믿는 자만이 주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 아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제사장, 왕들을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리 감독 하는 임무를 맡기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리 감독하도록 임무를 맡은 당시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로서, 백성들이 죄에 거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러다가 율법을 범하는 자가 생기면, 그들을 법에 의거해서 철저하게 응징하는 일도 함께 병행해 왔다. 그러니 그들 밑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우선 당장 본인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 말에 순종을 해야 했으며, 그런 결과로 그들의 순종은 결국 우선 당장 본인이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억지 순종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서 순수하게 순종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억지로 하는 순종과 믿음을 따라서하는 순종은 그 차원이 다르다. 억지로 하는 순종은 말 그대로 하기 싫지만, 우선 당장 살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하는 순종으로, 이런 순종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 순종이 거짓이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는 순종은 상대를 제대로 알고, 그리고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서, 믿음으로 하는 순종이기 때문에 이 순종은 변질이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가령 지도자들이 무엇을 시키면, 그 지도자가 한 말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믿고 순종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으면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마음을 다해서 부모를 공경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억지로 하는 순종은 똑같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해도, 그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말로 받아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마음을 다하지 않고 흉내만 낸다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 밑에서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순종했느냐? 믿지 않고 순종 했느냐?에 따라서 그 구원을 결정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면서부터는 구원의 판도가 확 바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믿음에 따라서 순종하는 자가 구원에 이르게 되었지만, 아들이 오시고 난 뒤로부터는 아들을 믿어야 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종과 주인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종들의 임무는 주인이 오시기 전까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임무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밤낮으로 지키면서 때에 따라서는 양떼들이 이리떼에게 물려가지 않도록 돌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양떼들이 죄에 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야! 그것은 죄니까 하지 마라!’ ‘야! 그것을 하지 않으면 죄로 인해서 죽게 되니까 해야 한다’며 양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양떼들 중에서 종들을 믿고, 말을 잘 들은 양들은 구원에 이르게 해주시는 것이다. 종들 또한 자기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종들은 구원에 이르게 해주시고, 자기의 맡은 봐 임무를 소홀히 한 종은 주인이 오실 때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주인 즉, 아들이 오셨을 때에는 순종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르기가 어렵다. 주인은 모든 것의 주인이신데, 사람들이 주인을 보고도 못 믿고, 종들 밑에서 하는 것처럼 그냥 순종하는 자세만을 취하겠다는 것은, 결국 속으로는 믿지 않고 겉으로만 믿는 척 해보겠다는 말이다. 아까 종들 밑에서야 그들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믿어도 그들은 직접 생명을 주지 못하고, 결국 죽고 난 후에라야 생명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아들은 생명의 주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즉시 믿기만 하면 바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을 싫어하고, 종들 밑에서처럼 순종만 하고 있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아들을 믿기 싫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생명의 주인을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라는 존재를 버려야 한다. 아까 종들 밑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버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육신으로 순종할 수가 있었지만,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라는 인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보니까 인간들이 그냥 종들 밑에서 하는 것처럼 육신으로 순종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악한 짓이다.


온전한 것이 왔는데도 그것을 보고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온전한 것이 오지 않았을 때에는 온전한 것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죄에 거할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온전한 것이 오고난후에는 정말로 자신이 죄를 멀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온전하신 아들을 믿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일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종들 밑에서는 평생 동안을 죄 아래 살면서 계명들을 지켜나가려니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웠던가? 그렇게 열심히 잘 하다가도 그중에 단 한번만 죄를 지어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을 해야 하고, 또 그들 밑에서는 늙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잘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순종으로 인하여 죽게 되면, 그나마 구원에서도 탈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서 빨리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을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줄 것을 바라고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앞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지만,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그만 눈이 어두워져 있어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믿지 않았으니, 당시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관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방인들 역시 성령 아래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죄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방인들 중에서 성령아래서 살고 있으면서 마음속에 미움, 시기, 질투가 없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찾아보라!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요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아직도 이방인들이 죄 아래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이방 백성들 가운데서 성령의 감독자를 뽑아서 그 백성들을 돌보는 일을 맡겨 주셨는데, 이들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영적인 양떼들을 돌보는 일을 맡겨 주신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이방 백성들이 영적인 온전한 아들이 오실 때까지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이리떼에 물려가지 않도록 최대한 잘 돌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인 백성들이 죄에 거하지 못하도록 ‘무엇 무엇을 해라!’또 ‘무엇 무엇은 하지 마라!’ 하면서 양떼들을 잘 돌보는 것이다. 구원의 방법은 아까 위에서 말했던 것과 똑 같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방인 가운데 영적인 아들이 오셨을 때에는, 영적인 백성들은 그 아들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 종들 밑에서처럼 그냥 순종하고 있겠다고 하는 것은, 첫째는 자신을 버리기 싫고, 둘째는 믿기 싫으니까 교묘하게 핑계되고 있는 것이다. 성령 아래서 살 때에 한번쯤 성령 충만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늘 그런 삶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을 것이다. 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지고 나서, 누구나 한번쯤 속이 답답함을 느껴봤을 것이다. 이럴 때 이구동성으로 느끼는 것은, ‘아! 어서 빨리 주님이 오셔서 죄에서 나를 완전히 해방시켜주셨으면!’하는 바램들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듯 말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예수께서 재림하시기에 앞서서, 영적인 아들을 먼저 보내서 이방인들의 죄를 없이 해 주시려고, 영적인 아들을 먼저 보내주시게 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이방인들은 영적인 아들을 보고 믿기만 하면, 마음속에 남아 있던 죄악 때문에 그토록 믿기 어려웠던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영적인 아들을 보고 믿기만 하면, 그야말로 천국이 내 안에서 즉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눈으로 보아도 마음으로 믿지 않게 되면 천국은 내 안에서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천국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반드시 쭉정이로 버림받게 될 것이다. 결국 영적인 아들을 믿는 자만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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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1-01 20:51
조회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