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주일 낮 설교

본문: 로마서11:25-32

제목: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 은혜를 단번에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도록 하신 후에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기고만장하여 마치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로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인간으로 하여금 반드시 자신을 죄를 깊이 깨닫도록 하여서, 인간스스로 ‘나는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신 후에야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 해야 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로 자기 자랑을 할 수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배신할 수도 없게 된 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탄생과정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단번에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먼저는 율법과 선지자를 보내서 그(죄) 아래서 신앙생활하게 하신 것도, 알고 보면 모두가 예수를 통해서 긍휼을 입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이런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죄) 아래서 살게 하신 것이 죄를 깨달아 가도록 하신 것을 모르고, 자꾸만 스스로 의로워 지려고 했으니, 당연히 ‘의’를 이루게 하실 분인 예수가 오셨을 때,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결국 어느 인간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없다고 하는 것이, 인간들에게 큰 걸림돌이다. 결국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을 통해서만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터인데, 인간들이 그 아들을 믿지 않고서는 결국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일차적으로 내려주신 은혜(율법도 은혜의 법이다)만을 최고의 것으로 여긴 나머지, 그 다음에 주어지는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여 모두 멸망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번 잘 못 끼워놓은 단추 구멍 때문에 끝까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두 번째 긍휼을 베풀러 오신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서도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잘 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째로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그들이 그것만은 믿고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러 가지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로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그들 눈앞에서 하는 일들(이적과 기사 및 말씀)은 어떤 경우라도 그들이 믿고 받아들였어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마지막 은혜를 거부하고 말았다.


이제 이것은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게 될 것이다. 현재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일차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피를 힘입어 원죄를 사함 받게 하시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두 번째 은혜를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살피는 신앙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방인들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보니까,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구원이다. 하는 논리로만 꿰맞추어서 살다보니까 그들 생각에는 성령만 받으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구나! 하는 사고가 그들 마음속에 팽배하다보니까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성령 받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있지, 성령을 받고나서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성령을 받고나서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 역시 이방인들에게 두 번째로 아들을 보내서 긍휼을 베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방인들 역시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처음 오셨을 때처럼 그를 믿지 않았던 것처럼, 이방인들 역시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방인들 또한 성령(죄) 아래서 살면서 그것으로 의로워지려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직접 보내셨던 아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방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은 무슨 수로 믿고 받아들이겠는가?


그렇더라도 이방인들에게 아직 한 가지 희망이 있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적인 아들을 당장에 알아보지 못하여서 금방은 믿지 못하더라도, 그가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서 혹은 그가 하시는 일들을 보고서라도 그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아들이나, 이방인 가운데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이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일은 인간들의 죄를 없이 하신다는 것과 또한 그를 보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다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오늘날 교회의 능력 있는 목사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성도들의 죄를 없이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 아들 즉, 온전한 분이 오시기까지 잠시 성도들을 모아서 관리 감독하고 있었을 뿐이지, 성도들에게 온전한 것을 제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를 믿고 나오는 자들은 모두가 마음속에 있는 죄를 사함 받고,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이 비로소 거듭나는(다시 태어나는) 순간인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거듭났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불신자의 영에 비해서 믿는 자의 영이 자유 함을 누리기 때문에 거듭난 것으로 표현한 것이지(영은 항구적이기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하는 것이 없음) 진짜로 내가 거듭났다는 말은 나의 주체인 나의 속사람인 나의 마음속이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고 하는 주체는 땅에서 태어난 나(속사람)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땅에서 태어난 내가 아담의 죄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들을 믿었더니 살려주는 영(예수의 영)에 의해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성도들은 영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이 베푸시는 마지막 은혜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처지에 있는 사람인가를 구구절절이 깨닫고 마지막 자신의 혼신의 힘을 쏟아서 주님의 긍휼을 다시 입어야 할 것이다. 이것마저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버림받기로 작정된 자가 틀림없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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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1-18 20:53
조회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