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쫓으라

구정(설)축복 예배

본문: 마태복음16:21-28

제목: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쫓으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먼저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약 2000년 동안 율법(죄) 아래서 살게 하신 후에, 기한이 이르매 약속대로 그들을 죄악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 주셨다. 하나님 아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일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여호와 사자(천사)와 선지자(종)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들이 오시기전까지는 줄곧 종들 밑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종들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할뿐이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없다. 만약 종들이 주인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날이면, 그나마 그 종의 자격마저도 박탈당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들은 백성들에게 생명을 직접 나뉘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저 주인의 아들이 오시기전까지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키며 살도록 보살피는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던 자들이다.


백성들에게 생명을 직접 나뉘어 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밖에는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들이 오시기전에도 벌써 생명을 얻어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런 자들은 아들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절도요 강도란 것이다. 그리고 또 종들의 말을 듣고 신앙생활해온 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백성의 대표들이 주인의 아들이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이 더 의로운 것처럼 주인행세를 하면서, 아들에 대하여 사사건건 시비하며, 율법에 대하여 요리저리 따져 물어서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에 대하여 책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천한 개만도 못한 주제에 주인의 아들을 자신들의 알량한 지식으로 판단하려 했으니, 그들의 교만과 오만불손함이 당시 얼마나 극에 달했던가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아들은 자신이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했기에, 그런 못되어 먹은 인간들 중에서도, 그나마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나오는 사람 12명을 뽑아서 제자로서의 훈련을 받게 하셨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어떠한 각오로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물론 본문은 당시의 상황을 그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방인들이 성령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듯이, 당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하시던 일과 오늘날 이방인 가운데 영적으로 오셔서 하시는 일 역시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인 가운데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우리)들 역시 그때의 제자들과 조금도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본문 앞 절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바요 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면서 칭찬을 해주시고는, 곧 이어서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시면서,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말씀하시면서 아무에게도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지 말라고 말씀 하신다.


그리고 곧 이어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쳐주자, 듣고 있던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버럭 화를 내시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는, 예수께서는 그곳에 둘러서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시는 말씀으로 단호하게 제자들에게 일러두시고, 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시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는 결단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아까 21절에서 예수께서 많은 고난을 박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을 때, 베드로가“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하면서 죽는 것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자는 결코 주님의 제자의 제자가 될 수없음을 상기시켜 주시기 위한 말씀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계획대로 이루어 드리시기 위하여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런데 당시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자,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시는 말씀으로 믿음을 확실하게 구분 짓도록 하셨다.


이제 거기에 비해서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영적으로 오신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육신의 목숨 따위는 가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하겠는데,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믿지 못하다보니까 육신의 목숨 또한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고 주저주저 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육신의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영적인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육신의 목숨을 버려야 내 가족이나, 이웃들이나, 남들에게도 목숨을 버리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방인들은 육체로 신앙생활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영적인 백성들인 만큼 반드시 살아있을 때, 자기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해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공중으로 들림 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이 구정 설이라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떨어져 살다가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야 낙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가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위로를 삼을지라도,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만나는 가족보다도, 영원히 죽지 않고 헤어지지도 않을 가족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내 육신을 포기하고 주의 영을 모셔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만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오늘 이 세상의 육신의 가족들 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만나는 가족들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육신의 아픔을 깨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이방인 가운데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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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1-22 20:54
조회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