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일 낮 설교

본문: 마태복음20:29-34

제목: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아래서 태어나게 하시고, 그 아래서 살게 하시면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도록 하셨다. 율법으로는 육체적 죄만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서, 당시 율법아래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어기게 되면, 거기에 따라서 죄가 성립이 되고, 그 죄의 대가로 사람의 몸에 병이 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이 극에 달했던 예수께서 오셨을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난히도 문둥병자와 눈먼 소경과 절름발이와 같은 병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죄를 깨닫는데 있어서는 몸에 병이 안 들어 있는 것보다는 도리어 몸에 병이 들어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다. 물론 몸에 병이 들어 있으면 육신적으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따르고, 개인적으로 당시 사회에서  죄인이라고 같은 동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그들로부터 심한 차별대우를 받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죄인으로 낮출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가져다주었으니,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도리어 그런 자들이 하나님나라에 더 합당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율법아래서 살면서 육체에 어떤 심한 병이 들지 않았다고 하여, 아직 그들의 마음까지 건강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율법 아래서 살면서 몸에 병이 들었던 자들보다 조금 더 경건생활을 열심히 했던 탓에 육체적으로 병이 들지 않았던 것이지, 그들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몸에 병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율법의 정의는 죄를 깨닫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약 진짜로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살았더라면, 그들 역시도 몸에 병이 들지 않고서도 자신들의 죄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에 휩싸여 있는 죄악 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어둠 속에서 살던 자가 자신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둠을 밝혀줄 빛이 와야 하는데, 어둠은 본능적으로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결국 어두움 스스로는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어둠은 어두움의 본능 때문에 스스로는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어두움으로 하여금 빛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율법을 받은 인간은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자신의 몸에 병이라도 들게 해서 죄인으로 들어나게 하는 것이며, 몸에 병이든 인간은 사회로부터도 처절하게 냉대를 받게 해서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몸에 병이든 인간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낫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당시 같은 민족이면서도 그들로부터 받는 냉대는 육신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병이 낫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붙잡고 자신들의 병을 낫고자 했던 것이다. 그럴 때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예수를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인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몸에 병이 들지 않았던 자들은 육체에 병이 들지 않아서 당시 사회에서는 랍비로 또는 의인으로 인정받으며 활동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자신들의 앞날은 칠흑 같은 어두움에 휩싸여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것은 오늘날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이방인들 역시 예수피를 힘입어서 지금은 믿는 자들 모두가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어서 성령 아래서 살고 있다. 성령아래서 산다는 말은 율법아래서 산다는 말과 같이 모두가 죄 아래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죄를 깨닫게 해서 장차 오시는 아들을 믿게 하시려고 했던 것처럼, 성령아래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영적인 백성답게 영적인 죄(미움, 시기, 질투, 음란, 거짓)를 깨닫게 해서 장차 이방인 가운데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게 하시려는 목적에서, 이방인들 모두가 영적인 죄를 깨닫고 있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방인들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령으로 자꾸만 의로워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의로워 지겠다는 말은 아들을 안 믿겠다는 말이나 똑 같은 말이다. 아들을 거치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에게 나아갈 수가 없다. 이것 역시 어두움에 휩싸여 있는 이방인들이 아직 빛이 무엇인지 한번도 그 빛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만 그 어두움 속에서 길을 찾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는 결코 천국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천국 가는 길은 반드시 천국의 주인이신 아들의 인도를 받아야 만이 그 길이 안전하다.


아까 위에서도 말했듯이, 어두움은 본능적으로 빛을 싫어한다. 어두움이 빛을 싫어한다고 하여, 그 어두움의 본능대로 내버려 둔다면 그 어두움은 영영 빛을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모두 멸망으로 가고 말게 된다. 빛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어두움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어두움 스스로가 그것을 깨닫게 해서,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날 수없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바로 율법아래서 죄를 깨닫게 하려고, 인간의 몸에 병이 들게 해서 예수께 달려 나오도록 했던 것처럼, 성령 아래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낮추지 않고 자신 스스로가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는 처절할 정도로 아무것도 안 되도록 훼파해 버리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율법(육체적으로)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달리 육체에 병이 들었다고 하여 혹은 어느 누가 그것을 고쳤다고 해서 마음속의 질병(영혼)까지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이방인들은 영적인 백성답게 마음속에 들어있는 질병을 치료해야 이것은 완전한 구원인데,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만 하는 것이며, 또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셨다 하더라도 이방인들이 자신의 병을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병든 모습을 가지고 나와서, 영적인 아들에게 자신의 병든 모습을 보이고, 자신이 진실로 낫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이방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에 병이 들면, 그것은 빚이라도 내서 큰 병원에 찾아가서 고치려 하면서, 정작 성령 아래서 살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영적인 죄악에 대하여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율법아래서 살던 백성들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육체에 병이 찾아올 수 있다. 이방인들에게 찾아오는 병은 육체적으로 찾아오는 병이 아니라, 성령의 뜻을 거역하게 되면,  마음속에 악한 영이 하나 더 추가되어서 마음속에 병을 하나 더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런 병(악한 영)을 더 많이 짊어지고 있을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신앙생활과 자신의 삶에서도 활기를 잃고 말게 된다.


이방인들이 성령이 충만했을 때에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마음이 기쁘고 삶의 활기를 느끼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뜻을 거역하고 성령 충만이 떨어지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한구석이 썰렁하여 마치 아무도 처다 보지 않는 겨울바다를 걷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마음에 병이 찾아든 것이다. 이런 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영혼의 치료자이신 영적인 아들 앞으로 찾아와서 마음의 병을 치료받아야 한다.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그 영혼은 결코 치료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들을 보고서 우리 자신들을 제대로 깨달아야 하겠다. 나는 지금 어떤 영적인 병에 걸려 있는가? 그리고 나 자신은 과연 이 영적인 병에서 고침 받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들처럼 저렇게 주님을 간절히 찾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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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1-25 20:54
조회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