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장차 되어질 일

주일 낮 설교

본문: 갈라디아서6:1-10

제목: 장차 되어질 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선지자들을 보내서 종교적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20세가 넘은 이스라엘 남자 모두가 일년에 한번씩 성전에 나가서 흠 없는 양을 제물로 하여 속죄제를 드려야 했으며, 매달마다 절차에 따라서 월삭을 지키고, 매년마다 조상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서 절기를 지켜야 했으며, 여기에 매주 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생활과, 일상생활 가운데서 율법에 따라 살다가 죄를 범할 때마다, 제물과 함께 양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서야 육체가 정결을 함을 입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수백 가지가 넘었으며, 그들의 열심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이런 율법과 종교적 행위 속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백성들에 앞에, 난데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그들의 위선과 거짓을 책망하고 다녔으니, 그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이었겠는가? 또 눈으로만 보면, 하나님 아들이라는 자가 자신들과 비교해 보아도 조금도 더 낳을 것이 없는데다가, 거룩히 지켜야 할 안식일에도 하나님 아들이라는 자는 버젓이 율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고 다녔으니, 어찌 그들 입에서 참람하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 아들이라면 당연히 율법도 더 잘 지키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함께 발 벗고 나서서 하루속히 로마군인들을 물리치고 성전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기울려야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자신들과는 전혀 동 떨어진 행동들만 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그들로부터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동안에 일으키리라!’하고 그들 앞에서 이런 엄청난 말을 해 버렸으니, 그들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그를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리며 좋은 일을 하고 다닌다 하여 여기저기 소문이 자자해서, 그를 좋게 봐주고 싶은 사람들마저도 예수를 좋게 봐 줄 수 없었던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앞뒤가 맞는 말을 해야 좋게 봐 주던지 말든지 해야 할 터인데, 이건 가면 갈수록 예수의 말과 행동이 자신들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좋게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 된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이제 이런 일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영적인 기독교인이 된 현재의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재현이 될 것이다. 이들 역시 전에는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다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지시자 그가 흘린 피를 의지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로, 예수 이름을 믿고 나오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다. 이방인들에게 오신 성령께서는, 예수 이름을 믿고 나오는 이방인들의 영속에 내주하시면서, 그동안 하나님법도 없이 살아가던 이방인들을 법아래서 살아가도록 길을 인도해 주셨다.

그 법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나가서 소 잡고, 양을 잡는 그런 율례에 따른 의식법이 아니라(그 법은 이미 예수께서 육체로 이루어 주셨음), 새롭게 재정된 법으로써 최소한의 의식만을 요구하는 간단한 법이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12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들면서 몸소 보여 주셨던 떡과 포도주 잔을 나누는 성찬식이다. 그리고 옛 사람을 장사지내는 침례(세례)의식이 있으며,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제자들이 안식 후 첫날 모여서 주님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오늘날 주일날 예배를 드리게 된 배경이다.

삼일예배나, 금요철야는 예수께서 제정하신 것이 아니고, 마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율법 외에 유전을 만들어서 지키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어떤 열심 있는 자들이 주님을 더 잘 경배하기 위해서 삼일 밤 예배나, 금요철야를 추가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이방인들이 최소한으로 삼가야 할 음식과 지켜야 할 도리로서는 사도행전15:29절에 나오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스스로 삼가는 자들은 잘 되리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방법으로는 개개인 각자에게 부어 주신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모두가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더군다나 성령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성령의 감독자를 세워서 그들을 관리 감독하도록 하신 것은 잘못된 이단교리와 거짓 목사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특별히 성령의 감독자를 세워서 그들을 관리하도록 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부름을 받고 세워진 목사들보다는, 성령의 은사 한 부분만을 갖고 목회를 하는 사람들과 또 여기에 성령의 인도하심도 전혀 없이 신학교만 나와서 세상지식으로 목회하는 사람들과 또 거짓 교리를 전파하는 목사들까지 합세해서 모두들 목사라고 하며,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성도들의 수준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이방인들에게도 추수기가 다가오고 있다 보니까 사람들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도 얼마나 설쳐 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이제는 자기 교단이 정통이다. 자기 교회가 진짜다. 자기 목사가 진짜 목사다. 하고, 이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종교적 행위만 일삼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회개하라고 하면, 과연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그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대단히 궁금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왜! 그것이 종교적 행위인가 하는 것은, 예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라고 일러주신 대로 성찬식과 성례식(침례, 세례),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예배드리는 일(주일 예배),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여 죽인 것을 먹지 말라 하신 것과 음행을 피하는 일을 지시하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이런 종교적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것으로 마음속의 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행위를 종결짓고, 기독교인들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고전13장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온전한 분이 오셔야 한다. 그가 바로 이방인들 앞에 나타나실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렇게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과연 오늘날 이방인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식 중에 하나인 성찬식과 성례식(침례, 세례)를 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삼일 밤 예배, 금요철야도 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하나님 아들을 자신들과 똑 같이 하지 않는다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하는 말과 행동들이 더욱더 이방인들을 자극한다. “야! 위선자들아! 겉만 거룩한 척 하지 말고, 속도 거룩해져라!” 그것을 바라보는 기독교인들, 특히 그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열심 있는 자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온다.‘야! 너는 성찬식과 성례식도 거행하지 않고, 또한 삼일예배와 금요철야도 드리지 않는 놈이, 뭐! 우리보고 위선자라고 네 놈이 바로 위선자다 이놈아!’ 네가 정말로 하나님 아들이고, 또한 정말로 예수께서 보내서 왔다고 믿는 다면, 예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 하신 성찬식과 성례식을 네가 함부로 거역할 수 있느냐?’ 이것만 보더라도 ‘네 놈이 가짜라는 것을 모르느냐?’ 이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죄인 된 입장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인간들이 어찌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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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3-28 20:58
조회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