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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주일 낮 설교

본문: 마태복음16:21-28

제목: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성경에 기록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일반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있고,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과 왜!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어야 생명을 얻게 된다는 내용들을 기록해 놓았다. 물론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일반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본분 외에도,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과 또 자기 십자가 즉,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들을 더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없이는 결단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없다고 하는 것이다.


일반 성도들이야 생명을 받는 입장이니까 자신이 살고 싶으면, 그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자신이 살고 싶지 않으면(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겠지만), 그 말씀을 생명으로 안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그들은 끝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일반 성도들과는 그 신분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앞으로 주님 편에 서서 일반 성도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할 사람인데, 그가 만약에 주님 일을 하다가 자신의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인간의 정에 끌려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서야 어떻게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생명을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주님의 제자인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은, 곧 주님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다. 주님은 절대로 인간 마음중심을 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제자 된 자가 인간의 정에 흔들리고 있다면 이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이런 자는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자신도 지옥 아랫목에 갈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오늘날 성령이 세워주신 감독자들이라도,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일생을 마감하였거든 하물며,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야 얼마나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 나가야 하겠는가? 선지자들이나, 성령의 감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나가셨지만, 생명을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들의 마음속에 좌정하셔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의 마음을 직접 움직여 나가시는 것이다.


또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오늘날의 성령의 감독자들은 하나님을 대리한 종(여호와 사자, 성령의 감화 감동)의 사역으로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사역을 하였다면, 구원 사역 즉, 생명을 나누어 주는 사역은 오로지 아들에게 맡겨진 사역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종을 통해서 쓰셨던, 성령의 감화 감동을 통해서 쓰셨던 종들의 사역도 대단히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아 세운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지자들이나, 성령의 감독자들에 비해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 사역이 길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종들을 통해서 약2000년 동안 사역을 해 오신 것을,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서 그 사역을 마무리 하시겠다는 약속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의 사역은 언제나 마지막에 가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바로 누가 마지막 신앙생활에 가서 아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냐에 따라서 생명 얻는 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님의 제자 되는 일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일반 성들이야 항상 자신의 자유 의지를 발동시켜서 주님을 믿을 수도 있고, 마음 내키지 않으면 믿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 물론 거기에는 선택의 여지에 따라서 반드시 자신의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믿고, 안 믿고는 이미 자신을 부인하느냐? 부인하지 못 하느냐?에 따라서 판가름이 났고, 이번에는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들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 들어갈 관(棺)을 짜들고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자이며,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 자는 죽을 각오도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관(棺)도 없이 따라간다는 것이다. 실지로 성경에 보면, 주님의 제자들 모두가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중간에 자기 동족들이나 로마군인들에게 잡혀서 살가죽이 벗겨지고, 채찍에 맞아서 살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자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해서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육신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주님이 책임을 지시고 재림하실 때, 부활시켜서 데리고 오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바로 이렇게 자신을 부인함은 물론이요 또 자신의 죽을 것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일반 성도들하고 다른 점이다.


주님의 제자 되는 일이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일인데,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이 강단에 와서 나도 다른 사람과 함께 훈련 받았다고 하여, ‘나도 주님의 제자입니다.’ 하고 나선다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론으로 알고 있는 그것으로 제자들처럼 흉내를 내기는 하겠지만, 속은 여전히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한 체 겉으로 진리인척 해야 되니 죽을 맛이겠지만, 그렇다고 이 노릇을 안 할 수도 없고 해서 하게 되다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되겠는가? 우리들 중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싶겠는가마는, 그러나 장담 못할 일이 사람일이라! 누가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리에 서지 못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가 바야 알겠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그는 이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도 피나는 훈련을 받는 것은 결국은 나 자신이 제자의 길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살을 에는 아픔도 참아가며 나를 부인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리 자신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강단에 오신 주님을 철썩 같이 믿고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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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2-29 20:57
조회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