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

주일 낮 설교

본문: 로마서9:1-13

제목: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


율법 아래서 살아가던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육신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었고,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 아래서 살고 있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현재의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구약의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스스로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자기 생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고 말씀 하셨듯이, 구약 백성들이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 이름을 많이 부르고, 율법을 충실히 잘 지켰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가 없고, 또 오늘날 예수 이름을 아무리 많이 부르고, 성령의 뜻을 좇아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는 없다. 구약 백성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모두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만을 아버지께서도 아들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열심히 지킨 것으로 자신의 ‘의’를 삼으려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지 않아서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더니, 이제 기독교인들마저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그 아래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밑에서 율법을 통해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모습하고 똑 같은 것이다. 율법 자체가 인간의 육신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으로는 아무리 의롭게 되려해도, 육신(껍데기)으로는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영 즉, 마음속에는 죄(부패)가 남아있기 때문에 절대로 의롭게 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계속해서 육신의 거룩함만을 좇다가,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의 외식을 질타하시자, 급기야는 예수를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율법 아래서 살아가던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사함을 받게 되고(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영이 원죄(마귀의 발아래서)에서 해방을 받게 되어, 믿는 자속에 성령이 내주하실 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령 아래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방인들에게 성령 하나님은 구원의 영(하나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들이 오실 때까지 이방인들을 보호하실 보호자 영(하나님)으로 오신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구원에 들어가게 된 것을 보고, 자신들도 예수를 믿고 성령이 임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온전한 구원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성령만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된 줄로 알고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율법 아래서 육신적으로 신앙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 그를 믿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었듯이, 오늘날 성령을 받아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이방인들 또한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 그를 믿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어느 인간이 만든 법칙도 아니고, 어느 교단 교리에 나와 있는 법칙도 아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하나님을 상징)과 이삭(이스라엘 땅에 보내질 육신을 입은 하나님 아들)과 야곱(이방인들에게 보내질 영적인 하나님 아들)의 예표를 통해서 육적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이미 예표로 주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결코 변개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당시, 율법 아래서 살아가던 자들은 이런 것이 아니라고 끝까지 반대 의견을 펴 보이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였으나, 이삭의 예표로 보내지는 하나님 아들을 그들이 막을 수는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에게도 야곱의 예표로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보내질 터인데, 이방인들 역시 이런 것이 아니라고 끝까지 반대할 것이 틀림없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온 세계 기독교인들이 힘을 합해서 그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된 내용이 바뀌어 질 리도 없고, 또한 야곱의 예표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그들의 힘으로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의 막강한 힘(숫자)앞에 하나님 아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여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믿고서 주의 영을 맛본 자들은 결코 아들에 관하여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진리는 그 사람의 지혜로서 알게 된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은 아주 중대로 한 기로에 서 있다.

이방인 가운데 야곱의 예표로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고, 영적인 하나님 아들의 증인이 되어서, 죽어가는 이방인들의 영혼을 살리는 주의 사자가 되어서 전 세계를 다니며 생명을 전해주는 복음 전파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성경에 예언 된 내용을 모조리 무시하고, 또 야곱의 예표로 이방인 가운데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도 모두 조작된 것이라 하여 믿지 못 하고서, 일반 기독교인들 입장에 서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아들과 끝까지 맞서서 싸울 것인가? 또 다른 하나는, 나는 야곱의 예표로 보내지는 하나님 아들도 모두 믿지만, 내 자신이 워낙 못나서 못 믿게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 아들과 싸우지도 않고 또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비방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 것이다. ‘그럼 조용히 살아가면 누가 생명을 준답디까?’ 세 번째 사람은 아주 고단수로 자신을 옹호하고 있는 사람이다. 차라리 그럴 바엔 두 번째 사람마냥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것을 도저히 못 믿겠으니 당신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겠다’ 어디서 슬그머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 드는가? 여러분들은 이제는 반드시 양당 간에 결정을 해야 한다. 야곱의 예표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고서 자신을 내려놓든가? 아니면, 아들을 도무지 믿을 수 없거든 자신을 내려놓을 필요도 없이 어서 여기를 떠나든가? 반드시 결정을 해야 한다.

이제 강단에서도 더 이상 여러분들의 편의를 봐 줄 수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강단에서도 이쪽(선)편에 서든가? 아니면, 저쪽(악)편에 서든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어정쩡한 행동을 취하며 양 다리를 걸치고 있는 자들에게는, 가차 없이 징계를 내려서 반드시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강도 높은 채찍질을 가하게 될 것이다.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6-20 19:27
조회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