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있던 것마저도 빼앗는다

주일 낮 설교

본문: 마태복음27:32-44

제목: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있던 것마저도 빼앗는다.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서 율법 아래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례를 따라서 성전에 나가서 소를 잡고, 양을 잡으며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들이 성전에 나가서 소를 잡고, 양을 잡는 의식은 모두가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예표로 주어진 것들이다. 그들은 이런 예표로 주어진 것들을 통해서 더욱더 자신들을 깨닫고 장차 오실 아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어야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표로 주어진 것들을 통해서 자신들을 깨달아가기 보다는, 그런 의식들을 행하고 있다는 그것으로 도리어 자신들의 신앙을 돈독히 굳혀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성전에 나가서 양을 잡아 드렸으니 그것으로 자신의 죄가 사해졌다고 믿고 있었으며, 또 소를 잡아 예물로 드렸으니 그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모든 행위들을, 곧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영이시라, 인간들이 소를 잡아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고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잡수기를 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인간들로 하여금 그런 것들을 드리게 하신 것은 오로지 인간들을 죄에서 건져 주시기 위한 하나의 예표였던 것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인간이 짐승의 피를 아무리 많이 재단에 뿌린다하여 인간의 죄가 사해지겠는가? 이것역시 장차 오실 아들의 예표로 주어졌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은 그런 행위들을 성전(하나님 앞)에 나가서 행했다하여 자신들의 죄가 모두 사해졌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자신들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육체는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체(몸)를 정결케 하는 의식들이 그것으로 마음속에 있는 죄까지 사해지는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많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뿌린다하여도 그것으로 육체는 정결케 될지 몰라도 마음속에 있는 죄까지 사해지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들은 육체가 정결케 되는 그것을 자신들의 신앙의 척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드디어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들은 선지자들이 그토록 오시마고 약속했던 메시아가 오셨다고 하여 처음에는 좋아 했지만, 메시아를 만나본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저 자는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의 원수라고까지 여기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왜! 메시아라면 자신들을 짓밟고 있는 로마 군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내지 않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그동안 죽도록 성전에 나가서 소 잡고,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또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금식하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드리고, 남의 것을 토색한 일도 없거니와 세리나 창기들처럼 몸을 더럽힌 일도 없는 우리들을 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을 하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로는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성전에 나가서 모든 율례의식을 행하였건만, 그리고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이건만 ‘너는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니 메시아라면서 어쩌면 이토록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모독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을 보니, 너는 틀림없이 가짜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육신적으로 알고 살아가던 그들에게는 영적으로 말씀하시는 아들의 뜻을 밝히 알 수 없었을 것이므로, 자신들의 눈에는 메시아가 멍텅구리 가짜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도, “거기서 한번 내려와서 너를 먼저 구원해 보아라! 그럼 우리가 너를 메시아로 인정해 주고, 우리도 믿어 줄 테니까?” 그런데 예수는 끝내 내려오지를 안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더욱더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이런 일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신앙생활 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재현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도 다를 봐 없다. 단지 그 당시와 조금 변화된 것이 있다면, 당시 여호와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으로 바뀌었고, 또 율법 아래서 행하던 율례의식이 성령의 법을 따라서 행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성전은 오늘날 교회(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몸이 성전이다)라고 하는 건물로 바뀌게 되었고, 당시 양을 잡아드리던 것은 예수 이름으로 대신하여 드려지고 있으며, 소를 드리던 예물은 돈으로 바뀌어서 드려진다. 그러니까 구약에 드려지던 제사제도와 비교해 보면 그때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오늘날에는 좀 더 간편하게 축소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구약 당시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이런 행위들을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열심히 행했다고 하여 인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온전히 사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들뿐이시다. 그런데 현재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시기도 전에 자신들이 먼저 구원 받았다고 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구원 받았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은 첫째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지 않던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성령이 자신들 속에 내주하시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구원의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성령이 인간들 속에 내주하시니 각각 개개인에게 은사가 주어져서 방언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이적과 표적도 따르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깨달을 수 없어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인간이 모른다고 하여 그것이 죄를 탕감 받는 일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들이 오셔서 그것을 설명하시는데, 이방인들은 아들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믿었던 예수는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믿었던 것이고, 예수의 피는 인간의 원죄를 사하시는 효력이 있으므로 믿는 자들은 예수의 피를 의지해서 원죄가 사함 받은 것이고, 그 증거로 성령이 인간의 영속에 내주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성령이 인간의 영속에 내주하시게 되니 그때부터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던 이방인들도 비로소 하나님이 살아 계신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더 많은 이방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성령께서는 각 개인에게 은사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이적과 표적이 따르게 하시니, 그것을 바라본 수많은 이방사람들이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예수를 믿게 되고,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이나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인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백성이 많이 불어나 있는 가운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온전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시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적인 백성들(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행했던 모든 것은 실상은 영적인 아들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예표였다. 성찬식이 그렇고, 침례(세례)가 그렇고, 예배가 그렇고, 주일성수가 그렇고, 모든 감사예물이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표로 주어졌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행하였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적인 아들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온전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 염려가 되는 것은 과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구약 때의 유대인들처럼 자신들의 행위들을 쉽게 내려놓으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자신들은 죽어라고 그동안 교회에서 열심히 한 것을 가지고 의를 삼으려 할 터인데(그것이 육신으로 한 것인 줄도 모르고), 과연 저들이 그것을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포기하는 자는 아들 앞에서 생명을 얻어 살게 될 것이고,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의 전철을 밟아서 자기 의로 인하여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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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6-27 19:27
조회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