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율법과 믿음

주일 낮 설교

본문: 갈라디아서3:23-29

제목: 율법과 믿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믿음 즉, 하나님 아들이 오시기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아래서 살게 하시려는 목적에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율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 아래서 살면서 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드러내서, 아들로부터 긍휼함을 입고, 모두가 영생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바로 그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할 때 매인바 되었다는 말은 죄 아래 갇혀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하는 말은 하나님 아들이 나타날 때까지 죄 아래 놓여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하는 말은, 율법아래 살면서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은 자는 결국 하나님 아들 앞으로 인도를 받게 되므로, 아들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을 하고, 아들로부터 비로소 긍휼(죄 사함)을 입어 의롭게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몽학선생’이란 말은 주인의 상속자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학덕을 겸비한 노예가정의 교사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하나님 아들이 온 후로는 그동안 우리를 가르쳐온 학덕을 겸비한 가정교사 밑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많은 지식을 겸비한 가정교사(율법)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깨달았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이 즉시, 아들(믿음) 앞으로 달려가서 그 아들 앞에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모두 털어놓게 되면, ‘아들은 하나님의 분신으로 사랑이시라!’ 자신의 모든 죄악을 털어놓는 인간에게 긍휼함을 입혀서, 그런 자를 죄 아래의 노예 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어떤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 즉, 영생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가? 오늘날 이방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깊은 속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법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은 영원히 폐해질 수 없다’고 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의 날(주일날)도 부정하며, 안식 후 첫날에 예수께서 부활 하셨다 하여 토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육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믿음이라 여기고 육체로 하는 경건생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오늘날에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대부분은 기성교회에서 이단이라고 점찍어 놓은, 여호와 증인과 안식교, 그리고 박옥수 같은 자들이 있는데, 아무튼 이들의 특징은 육체의 거룩함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런 반면에 오늘날에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막가파식으로 믿는 자들이다. 그들에게서는 도무지 육체의 경건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불신자들보다도 더 못 된 짓과 못 먹을 것을 골라서 먹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고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식의 사람들이다. 이런 비유를 사도바울은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육체를 방종의 기회로 삼아 살다보면 피차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법이 주어져 있다. 이 세상의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그 나라에는 국민이 있고, 국민이 있으면 그 나라 국민들이 지키고 살아가야 법이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세상 나라도 이럴 진데, 하나님 나라에도 당연히 백성들이 있고, 백성들이 있으면 백성들이 지키고 살아가야 할 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는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들이었으므로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 법으로 율법이 주어졌고, 이제 그 두 번째로 예수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 현재의 기독교인들에게도 법이 주어졌는데, 그 법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법이다. 성령의 법은 율법과 달리 사람 마음속에 주어진 법이다. 율법이 인간 육체에 주어진 법이라면, 성령의 법은 인간 마음속에 주어진 법이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백성들에게 주어진 법이라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 성령의 법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한 오늘 본문 말씀을 오늘날 성령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믿음(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성령의 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런 해석은 아까 위에서 말한바와 똑 같다. 똑 같은 해석방법으로 “이같이 율법(성령의 법)이 우리를 그리스도(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가정교사)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영적인 하나님 아들)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계속해서 말하는 바는 “믿음(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우리를 가르치는 가정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교들은 어느 누구도 아직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만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 이방인들 중 어느 누구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이방인들 모두가 이대로 죽으면 어느 누구도 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도 야곱의 예표로 하나님께서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성령의 법을 통해서 자신의 속마음의 죄악을 깨닫고 모두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적인 아들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실토하고, 그에게 긍휼함을 입어야 비로소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모두가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 혼자서 백날 교회를 다녀 봐도 그것은 자기 신념에서 나온 믿음을 키우는 것이지, 천국의 주인으로부터 주어지는 믿음은 아니다. 이곳에 있는 성도들은 바로 이점을 확실히 하고 자신의 앞날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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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8-08 19:32
조회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