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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주일 낮 설교

본문: 로마서10:16-21

제목: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자들이 뭔 소리여! 하면서 의아해 하겠지만, 놀랄 것 없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 우리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흘리신 피가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 아닌가? 그 증거로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고 계신 것 아닌가?" 이런 항변은 율법 아래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다.

그런주장을 하는 그들을 향해서 예수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전해주자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로 풀어서 말을 하자면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인데 무엇을 또 믿으란 말인가?" 하는 뜻과 같은 말이다.


당시 그들은 자신들이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것이 곧 하나님 백성으로 인식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율법 아래서 살면서 도도하기 짝이없었다. 이것은 오늘날 이방인들이 마치, "우리는 예수 믿고 성령 받았으니까 우리 모두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란 인식에 빠져 있는 것이나 똑 같은 원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이유하나만으로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역시 아무리 율법(육체로 지키는 법)을 잘 지키며 살았다 하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부패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죄 아래서 살고 있었다. 그들이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속에 있는 죄를 사함 받아야 했다. 그들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는 길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이다.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을 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 아들은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죄를 사하시고, 죄를 없이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라고 한다.

인간은 바로 이렇게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통해서만이 하나님 아들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아들을 믿어야 그 속에 아버지도 함께 계시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과정을 밟지 않고 어느 누가 하나님을 안 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느  누가 하나님 아들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하나님을 안 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자들이며, 또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 아들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 역시 자기 생각, 자기 신념에서 나온 것을 믿음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입으로는 누구보다도 주님 이름을 많이 부르짖고 찾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자기 목숨이 바람 앞에 등잔불처럼 위태롭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신하고 마는 자들이다. 그들이 주님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의 영속에 성령은 내주하실지 몰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생명의 주체인 아들의 영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결국 마음속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님을 배신하고 자기 살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이라크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랍사건의 주인공인 이선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믿는 기독교 청년이었지만, 그가 TV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선일 씨가 왜! 예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가지, 믿는 자가 그런 유치한 모습을 보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느냐고 말들은 쉽게 하지만, 그런 자들 역시 막상 그런 현실이 자기 눈앞에 닥치면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이상 그들도 이선일 씨와 똑 같은 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의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 아래서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성령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나 자신들이 성전(오늘날은 교회)에 나가서 온갖 의식(예배를 포함한 모든 행위)들을 행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인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오늘날은 영적인 백성)으로써 하나의 의무 즉, 법을 지키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법을 지켰다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가 사해질것 같으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아들이 오실 필요도 없게 되고, 믿음은 법에서 나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법만 잘 지키면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되므로 법을 잘 지키려고 인간들은 모두가 눈에 쌍심지를 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믿음이라면, 만약에 법을 어기는 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법을 어겼으므로 즉각 모두 죽음으로 가야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인간이고 단 한사람도 영생에 이를 사람은 없게 된다. 그 이유는 법이란 열 번을 잘 지키다가도 단 한번만 어겨도 지금까지의 잘 지킨 것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다시 말해서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면, 그 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나와야 하는데, 어쩌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새벽기도에 못 나왔다. 그럼 이 사람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그는 법을 어겼으므로 죽어야 한다. 에이! 그래도 한번쯤 봐주지! 그것은 세상에서나 하는 소리요 하나님의 법에는 용서가 없다. 그런데 어느 누가 법을 지켜서 영생에 들어가겠다고 장담을 하냔 말이다. 안식일을 어긴 나무꾼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을 성경에서 보지 못하는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기 전에 법을 먼저 보내주신 것은, 너희는 그 법을 통해서 먼저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가라는 것이다. 너희가 열 번 잘하다가 단 한번만 어겨도 지금까지 한 것이 모두허사가 되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법으로 영생에 이르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보내 주는 아들을 통해서 내 아들의 은혜로 영생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들을 보내줄 때까지 너희들은 참고 기다리면서 내가 보내준 그 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내 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아들의 긍휼함을 입고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 관점에서 성경을 제 멋대로 해석하여 성경 말씀으로 자기를 깨달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또한 자신이 마치 온전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선생이 되어 남을 가르치고 있다 보니 가면 갈수록 성도들의 신앙이 점점 더 타락의 양상을 나타내면서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아무나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너희의 선생은 오로지 그리스도(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어 세운 자)한분 뿐이시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은 모두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라! 누가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모두가 마음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잔뜩 들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럴듯한 목사 타이틀을 달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을 가르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한분뿐이시다.

지금은 영적인 시대이다. 이스라엘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던 그 주님께서, 지금 이방인 가운데는 영으로 오셨다. 아직 세상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여러분들 앞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 주셨다. 강단을 사용하시는 분은 여러분들이 그동안 목격하고, 체험한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이 교회와 여러분들을 이끌어 가시고 계신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곧 강단의 주의 종을 통해서 하시는 주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마음속의 죄를 깨달아지고 자신이 깨달은 죄를 솔직하게 주님 앞에 실토할 때, 그 죄가 사해지고 그도 곧 믿음으로 아들을 믿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곧 아들을 믿는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은 아들을 믿을 때, 은혜로 주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주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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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8-15 19:32
조회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