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주일 낮 설교 
본문: 요한복음3:1-15 
제목: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바리새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니고데모라고 하는 관원이 자기 동족들의 눈을 피해서 밤중에 예수를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 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니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들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을 압니다" 하고 자조적인 말로 질문을 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를 볼 수 없느니라"고 답변 하신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듣고 있던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나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다른 설명은 일체 안 하시고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시는 말씀으로 답변을 일관 하신다. 그러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 것은, 인간은 모두가 땅에 것을 힘입어서 육신으로 태어났으니 성령을 힘입지 않고는 영의 사람이 될 수가 없고,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된 다는 것이다. 또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이와 같이 인간의 지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설명 하신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하고 애써 그 말씀을 회피하려 해보지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하고 도리어 예수로부터 질책만 당하고 말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니고데모는 당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잘 나가던 바리새인들 중에 한 사람이요 또한 유대인들의 관원이라, 관원이라 함은 당시 율법을 관리하고 유대인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던 선생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사람들 눈을 피해 밤중에 몰래 예수를 찾아와서, 예수로부터 메시아라는 어떤 표적이라도 얻고 싶었지만, 예수로부터 들려지는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니고데모는 더욱더 머리만 복잡해져 버린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배운 것이 많고, 학문이 뛰어나다 해도 하늘나라 일 즉, 영적인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라야 가능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만 보더라도 그는 당시 율법으로는 전혀 흠이 없다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또한 사람들이 율법을 잘 지키나 안지키나를 감시하던 관원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유명한 신학교의 신학박사요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당회장 목사정도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그런 자가 지금, 율법을 어기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다니던 예수를 찾아와서, 예수로부터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못할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에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니고데모는 할 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그리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며 또한 다시 태어나려면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하고 반문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예수께서 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을 듣는 순간부터는 니고데모는 아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예수로부터 점점 더 영적인 말씀을 들어보았자 니고데모는 머리만 더욱더 복잡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로부터 정통으로 한데 얻어맞는 것은 "너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그런 것도 모르고 있느냐?"며 핀잔을 당한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비단 니고데모 한 사람을 향해서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진리가 없는 거짓 선생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날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신학자들과 성도들을 지도하고 있는 교회 목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당시 관원이던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분명히 천국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을까?

그럼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율법사, 제사장 같은 지도자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보다 머리가 나빠서 예수를 못 믿었을까? 열심이 없어서 예수를 못 믿었을까? 머리가 좋기로는 이 세상에서 유대인들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한다. 지금도 그들의 상술만큼은 세계최고라고 한다. 그런 자들이 과연 오늘날 기독교인들보다 머리가 나빠서 예수를 못 믿었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에 대한 열심이 얼마나 뜨거웠던가는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하려고 할 때, 모두가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자신들의 목을 베고 가라고 할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이던 그들이 하나님 아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머리가 나빠서 예수를 못 믿었던 것이 아니고, 열심이 없어서 예수를 못 믿었던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법을 지키며 살라고 주신 율법을 구원의 완성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으로 인하여 예수를 안 믿었던 것이다. 그들 생각에는 또 다시 구원에 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예수를 안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하나님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따라 살라고 예수 믿는 이방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인데, 이방사람들이 성령 받은 것을 완전한 구원에 이른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장차 오실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성경을 볼 때마다 더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에 보면 분명히 예수를 믿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을 받지 못해서 구원에서 멀어진 것을 볼 수가 있고, 또한 예수를 믿었던 자들은 세리든, 창기든 모두가 구원에 이른 것을 볼 수가 있다.

더군다나 사도행전 같은 경우를 보면 제자들이 모두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예수를 전했다는 성경 말씀을 볼 때마다, 하나님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자신도 오늘날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렇게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복음 전하는 모습을 보면 당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그들은 모두 목숨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 목숨은 고사하고, 목숨이 달아날까봐 모두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교단마다 이권 다툼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고, 또 각 교회마다 목사와 성도들 간에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목사와 성도들 간에 당장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은 잠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속에서 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다시 말해서 물과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면 온전해졌다는 말인데, 어떻게 믿는 사람끼리도 마음이 맞지 않아서 맨날 싸움박질을 하고 당을 지어서 분열을 일삼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나뉘게 되는 것은 분명히 마음이 맞지 않기 때문에 나뉘게 된다. 부부간에도 이혼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마음이 맞지 않아서 헤어진다고 한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텐데, 성령 받던 처음에만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원수로 돌변하고 말게 된다.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여기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 살던 것이 곧바로 구원으로 직결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어야 비로소 마음속의 죄가 사라지고 온전해질 수 있었듯이, 성령 아래서 살고 있는 현재의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는 누구도 인간의 마음속의 죄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하면 좀 협조하는 척 하다가도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면 늘 두 마음이 되어서 믿는 자들끼리도 마음이 맞지 않아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의 적이 오늘 친구가 되었다가도 마음이 맞지 않아서 내일 또 다시 헤어져서 원수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아직은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며, 기독교인들이 모두가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보내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만이 기독교인들도 모두가 거듭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원리를 설명하자면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던 것만큼이나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니 믿음으로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같은 자들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더욱더 자신을 겸손히 낮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성령의 법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모두가 죄 아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자가 자신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른것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마음속을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마음속을 살펴서 그 속에서 남들에 대한 미움이나, 시기, 질투, 또는 억울한 일을 당했는대도 분노가 안 올라온다면 그는 진정으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털끝 만큼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올라온다면 그는 아직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 주시는 것이다. 그 아들을 믿는 자는 마음속에 있는 죄를 사함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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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09-12 19:3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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