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오라!

주일 낮 설교 
본문: 마가복음5:25-34 
제목: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오라! 

본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그동안 용 하다는 의원들을 모두 찾아다녀 보았으나 있던 재산만 허비할 뿐 전혀 효험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병만 더 얻어가지고 있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병을 고칠까하여 예수를 찾아왔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몰려와서 예수를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게 접근하기가 그리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주변 환경이 어렵다하여 여기서 자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생각할 때에 이까짓 주변 환경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그런 고통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인데,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집을 나설 때부터 마음의 결단을 하고 자신의 집을 나섰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마음을 포기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혈루증은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부정한 유출병이다. 그런 부정한 병을 앓고 있던 여인이 이유야 어찌 되었던 집 밖을 함부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나, 없나를 살피고 다니는 산헤드린 관원들에게 발각되게 되면 즉각 그곳에서 추방을 당하거나 잘못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날에는 간음한 여인처럼 돌멩이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고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를 찾아 나선 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자신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본 처지라 이렇게 고통 속에 살다 죽으나, 차라리 예수를 찾아가다가 관원들에게 붙잡혀 돌멩이에 맞아 죽으나, 죽는 것은 매일반이라는 생각으로 예수를 찾아간 것이다. 그녀는 가면서 예수있는 곳까지만 찾아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곳에도 험난한 장애물은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이미 예수의 소문을 듣고 벌떼처럼 몰려들어 예수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힘센 장정들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가? 그것도 혈루증을 앓고 있던 부정한 여인으로서 말이다. 만약 여기서도 사람들에게 혈루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게 되면 그녀는 즉각 산헤드린 관원들에게 고발당하게 된다.

아마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 정도 장애물이 가로 막고 있다고 한다면 말로는 모두가 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막상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치게 되면 십중팔구는 다 포기하고 말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단을 하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아무리 힘센 장정들이 예수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을지라도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만나야 했기에 때문에 연약한 여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힘센 장정들을 힘으로 물리칠 수는 없었기에 장정들의 다리 사이로 손을 내 밀어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보고 싶은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녀는 사력을 다하여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댔고, 그 즉시 예수로부터 능력이 나와서 그녀는 즉시 혈루근원이 마르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성경에는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수 앞에 달려 나와서 예수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장면들이 수도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삭개오가 그랬고, 소경 바디매오가 그랬으며, 문둥병자들이 그랬고, 귀신들린 자들이 그랬다. 당시는 율법 아래서 육체로 신앙생활 하던 때라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보다도 더 큰 장애물은 항상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야 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일이 결코 쉬운일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산헤드린 관원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만 감시할 뿐 아니라, 어느 누가 이단 괴수라고 낙인찍힌 예수를 믿나 하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그런 자들을 잡으러 다니는 상황에서 당국자들의 눈을 피해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추방당할 것을 각오하거나 아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그런 어려움이 따르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런 살벌한 상황 속에서 당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예수를 믿고 나온 자들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자들이 우연히 오다가다 혹은 운이 좋아서 예수를 믿게 된 자들이 아니고, 모두가 이런 어려운 주변 환경을 극복하고 예수를 믿었던 자들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대인들에 비해서, 오늘날 성령 아래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주변 환경 때문에 신앙생활하기가 곤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는 일제 치하에서 믿는 자들이 수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해방 이후로는 주변 환경이 어려워서 신앙생활 못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잠시 고통이 있었지만, 그것은 잠깐의 시련으로 그쳤고 지금까지 별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육체적인 고통을 겪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로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 때문에 잘못을 하게 되면 늘 육체적 고통이 따랐지만, 그들에 비해서 기독교인들은 잘못을 하게 되어도 금방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즉, 마음이 병이 들게 되는 것이다. 육체로 나타나는 병이야 금방 눈으로 보고 알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병든 것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치료도 그만큼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육체가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마음속이 병들어 있다면 그는 이미 죽은 자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성령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잘 살피고 신앙생활 하라는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음속의 질병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가운데 보내 주시게 되는데, 기독교인들은 그를 믿어야 만이 마음속의 온갖 질병(죄악)들을 치료받을 수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그를 믿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까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보다도 당시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과 주변여건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힘들었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백성답게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큰 난제다. 과연 저 사람을 하나님께서 진짜로 보내주신 아들로 믿어야 할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자신의 생각과의 싸움에서부터 시작하여 온갖 자신의 생각들 속에서 죄악으로 구별되는 혈기, 미움, 분노, 욕심, 두려움 등을 버리지 않게 되면,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무엇을 믿고자 했을 때에는 분명히 상대방이 나를 책임질만한 충분하고도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상대방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피는 나눈 형제라도 육신적인 거래는 이루어질지 몰라도 나의 목숨을 담보로 한 믿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실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적인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다 물려받아 가지고 계신분이다. 따라서 영생이면 영생, 물질이면 물질, 하기야 영생을 얻게 되면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되는 것이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이런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실 분이 없는 상태에서는 누구를 믿는 다는 것이 어불 성실이다. 따라서 아들이 오시기 전에는 온전한 믿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온전한 믿음은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면서부터 시작되어 지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은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라고 하는 옛 사람을 버려야 하고, 또 자신을 늘 넘어지게 하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장애물이다.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그 장애물을 깨부숴야 하는데, 그 장애물을 깨부수는 방법이 바로 강단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지적 받을 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쉽게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그 장애물은 절대 부서지지 않고 요리 저리 피해만 다니는 것이다. 그 장애물은 오직 빛 되신 아들만이 찾아주실 수 있는 것이다. 죄악된 인간로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찾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교회에서는 절대로 온전한 자가 나올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강단에서 본인들의 장애물을 찾아내서 그것을 지적 해 주었을 때, 그것을 본인이 그렇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그 장애물은 결국 제거되고 만다. 그러나 본인이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이것이 바로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자신의 죄악을 자꾸만 숨기려 한다면 자신의 장애물은 제거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아들로부터 은혜를 받아 누리는 방법이다. 그러니 이곳을 떠나서는 자신의 장애물을 누구도 제거 받지 못하고 그대로 안고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가 바로 주님의 백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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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10-03 19:38
조회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