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주일 낮 설교 
본문: 누가복음18:1-7 
제목: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본문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끝까지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하시는 말씀으로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또 주께서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끝까지 낙망치 말고 인내로 기다려야 할 것들을 교훈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을 예로 들어 설명하시면서, 그런 불의한 재판관 입장에서는 뇌물을 갖다 바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라도 재판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과부 같은 자들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인데 무슨 수로 그런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재판관이라도 굴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날이면 날마다 그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속사정을 아뢰는 것이다. 하나님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들도 무시하는 그런 안하무인 같은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날이면 날마다 찾아가서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 하게 되면, 과부가 불쌍해서 혹은 과부가 하는 말이 타당성이 있어서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귀찮게 하기 때문에 과부의 소원 들어주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저런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찾아가서 자신의 속사정을 아뢰게 되니 결국 그가 귀찮아서라도 그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런 불의한 재판관보다도 훨씬 더 빨리 우리들 마음의 소원을 속히 풀어주지 않겠냐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들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모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며, 또한 인간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들 죄악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내세운 모세 말만 잘 듣고 순종했더라면 아무 문제없이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가나안 땅에 모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죄악으로 얼룩져 있는 인간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넉넉잡아 7일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무려 40년이나 광야에서 허비해야 했으며, 그로 인해서 지칠 대로 지친 백성들은 광야생활에 악만 남아서 눈으로 보는 대로 대적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원망하다가 애굽을 출발한 1세대는 모조리 광야에서 죽고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만 겨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출애굽 당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조금도 다를 봐 없는 사람들이다. 그때 당시와 현재라는 시간상의 차이만 날뿐이지, 그 당시보다도 훨씬 더 영적인 모세도 준비되어 있고,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영적인 백성들도 준비 되어 있으며, 그리고 그때 당시보다 훨씬 더 살벌한 영적인 광야도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강단의 말만 잘 듣고 따라오면 단 7일간이면 충분히 영적인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우신 강단을 믿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일삼게 되면, 7일이 아니라 70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들이 어디서 모두 넘어졌는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넘어졌던 곳은 모두 광야생활이다. 무엇 때문에 넘어졌는가? 그때 그들은 먹을 물과 양식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즉,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어두움의 주관자들과의 싸움이다"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결국 우리의 마음 밭이 광야생활인 것이다. 삭막한 광야생활에서 자기 생각대로 가다가는 필경은 낭패를 보게 된다.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영적인 모세를 믿어야 하고, 그 말씀 앞에 전적으로 나를 무릎 꿇려야 한다. 이것이 현재 이곳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런 모든 훈련을 통과하게 되면 먼저 일곱 지도자들을 선발하게 될 것이다. 일곱 지도자들이 선발되게 되면 이들은 앞으로 영적인 모세를 도와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영적인 백성들을 이 세상(애굽)에서 영적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계획하신 영적인 대 출애굽 사건이다. 

그러시면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 하신 말씀처럼 "인자가 이 세상에 올 때에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 또한 끝까지 나를 믿고 기다릴 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이곳에 거하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강단에서 갖가지 방법을 다 써가며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의에 이루어지든, 타의에 이루어지든 그야말로 각 개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적용시켜서 여러분들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여러분들이 강단을 하나님께서 내세운 아들로 믿는다면, 그런 고통쯤은 자신의 죄악으로 돌리고 참아 견뎌 낼 것이고, 만에 하나 자신이 끝까지 믿지 못하여 중간에 그것을 포기하게 되면 그것으로 믿음에서 탈락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자가 세상에 올 때에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혹독한 훈련을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는 앞으로 영적인 대 출애굽을 하는데 있어서 자칫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소흘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때를 대비하여 미리 미리 강하게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 일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기브온 거민들이 자신들은 먼 곳에서 왔다고 여호수아를 속이고서로 화친을 맺자하여 언약을 체결하고 교묘히 살아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후 여호수아가 그들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들이 적에게 당하고 있을 때 여호수아가 밤새워 달려가서 그들을 구출하는 고행을 겪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은 한번 잘못 맺어진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가 영영 돌이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더욱더 우리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거치게 하여 강인한 자들을 만들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11-14 19:53
조회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