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예수님을 믿었거든 그가 보낸 종도 믿으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야할 것을 아시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다면 또 나를 믿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마음을 굳건히 하고 흔들리지 말라!"는 말로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상황에서 예수가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그렇잖아도 예수를 따른다하여 유대인들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던 자신들의 신세가 예수마저 떠나고 난다면 제자들은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 신세가 되고 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제자들에게, 자신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늘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당시에는 그가 하신 말씀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주여! 주에게 절대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나이다"하는 말로 충성심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또 다른 제자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하며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하는 말로 예수님의 의중과는 전혀 딴판의 질문을 함으로써 예수님을 곤욕스럽게까지 하였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느끼는 것은, 주님이 목사님 사모님 마음을 붙잡고 쓰고 계시는 강단과 여러분들이 죽어라고 강단을 따라 해보지만 3일도 못가서 자신 속에서 올라오는 악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져서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이것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여러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꼭 여러분들처럼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자꾸만 동문서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런 것을 배제한 체 스스로 혼자서 예수를 잘 믿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며, 그것은 벌써 예수를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겠다고 하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을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오늘날 교회에서 무슨 일 좀 했다하면 그것을 믿음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수 있는 믿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 헛것이 되고 인간의 노력만 남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오만 불손함이 어디서 생기게 되는가? 바로 자신이 노력해서 믿음을 얻을 수 있다는데서 교만함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믿음을 얻은 자가 얼마나 기고만장하겠는가? 그런 자가 누구 말을 들을 것이며, 또한 얼마나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다니겠는가?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오늘날에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은 자들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의롭다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을 알고 주님 앞에 두 손을 들고 주님을 믿고,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선물로 받은 자이기 때문에 오만함이나 교만함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이런 자는 죽어도 주님의 은혜요 살아도 주님의 은혜임을 잊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던지 그를 따르게 되어 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므로 성령을 받지 못한 고로 완전한 주님의 은혜 속에 머물지 못하여 육신의 생각으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에 동문서답을 하고, 또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하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아들 예수도 완벽하게 믿었음이 옳았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렇게 맨 앞장서서 충성을 보이던 베드로마저도 "애들아! 물고기 잡으러가자!" 하며 자기가 먼저 앞장서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신은 이렇게 간사하기 짝이 없고 연약한 존재다. 이런 연약한 존재인 육신을 믿고 우리가 무얼 하겠는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신다. 그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인간의 마음 같았으면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연약함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애들아! 고기 많이 잡았느냐?"고 물으시면서 제자들이 많이 잡지 못했다고 하자 그물을 다시 배 왼편에 던져보라고 하자 제자들이 그대로 따라 했더니, 큰 물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나 잡힌 것을 보고 그제서야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다시 예수를 좇더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제자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도 똑 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강단의 목사, 사모님을 주님이 보내신 종으로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말뿐이지 뒤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심지어는 함께 생활한지 몇 년이 지나지만 지금도 강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갖다 주는 것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또 다른 자는 자신들은 죽도록 일을 하는데 목사, 사모는 놀러나 다니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니 더 말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집안에 무슨 일이 터지면 뭐 하러 강단에 도움을 받으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으면 강단에 도움을 청하지를 말던가? 아니면 강단에 도움을 받으려 하거든 그런 생각을 버리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인데, 내가 고통가운데 있으면 강단에 도움을 청하고, 내가 강단에 가져다주는 것은 아깝고,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 여러분들의 모습이다. 
목사, 사모를 쓰고 계시는 주님은 여러분들의 이런 못된 근성까지도 포용하시면서 여러분들이 어서 빨리 죄인으로 드러나서 강단의 목사, 사모를 주님이 보낸 종으로 믿기를 원하고 계신다. "너희가 진실로 나(예수님)를 믿었거든 내가 보낸 종도 믿으라! 그것이 곧 나를 믿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는 모두들 나(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내가 보내 종은 믿지 않더라는 것이다. 주님은 계속 말씀 하신다. 그는 내 것을 가지고 말할 것이며,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내가 그 마음속에서 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독한 인간들은 그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는 우리와 똑같이 땅에서 태어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래서 예수님도 안 믿었던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 아니고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자랐으며 지난 30년 동안 그가 어떻게 생활하며 지냈는지 우리 모두가 쭉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는 아들 예수를 이스라엘 땅에 보내셨고, 예수는 또 다시 당신의 종을 이방인 가운데 보내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이방인들이 모두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직접 보낸 종(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모두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을 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가 보낸 종을 믿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 이곳에 몸담고 있는 여러분들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빨리 이곳을 떠나던지 아니면 당장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었거든 그가 보낸 종도 하나님 아들로 믿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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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4-12-05 19:53
조회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