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나는 양의 문이라!

주일 낮 설교

본문: 요한복음10:1-18

제목: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 표현하신다. 그러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으로 예수님 자신을 양의 문으로 표현하여, 양들이 자신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안에 온전히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 하시고 있다. 만약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는 절도요 강도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시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는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율법 아래 살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이다. 당시 그들 눈으로 보면 예수의 육체나 자신들의 육체나 전혀 달라 보일 것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육체와 같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의 육체와 예수의 육체는 엄연히 달랐던 것이다.


만약에 그들의 육체가 예수의 육체와 똑같은 존재였다면 요단강에서 모두들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을 때 그들에게도 똑같이 성령이 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지 안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도 마귀의 발아래서 그들의 영혼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당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예수에 대하여 시비를 걸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들이 양의 문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하여 이리저리 자로 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다 못한 예수께서 드디어 입을 열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양의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하시는 말씀으로 구원의 척도를 명확하게 말씀하여 주셨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시 지도자층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물론 그런 소리를 미친 녀석이 하는 소리쯤으로 듣고 귀담아 듣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예수께서 하시는 행동들을 보면서 그런 자들도 점점 더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들이 자신들이 생각해보아도 전혀 터무니없는 것들이라고 끝까지 우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에 대한 후한을 두려워한 나머지 한 가지 묘책으로 예수를 아예 죽여 없애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만세전에 세워진 계획인줄도 모르고 마귀와 함께 거기에 쓰임 받는 인간들은 기꺼이 그 일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그로 인하여 마귀는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어 쫓겨나게 되었고, 거기에 쓰임 받았던 인간들 또한 가장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죽은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니 결국 예수를 죽였던 마귀만 참패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예수는 이제 부활의 몸으로 아버지 곁에 계신다. 이는 영으로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 예수께서, 예수 이름을 믿고 영적인 백성이 된 현재의 기독교인들 속에 영적으로 다시 오셔서 양의 문으로 계시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가 있다면 이는 절도요 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벌써 자신들이 양의 문인 것처럼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누구는 구원을 받았네! 아니 받았네! 또는 어느 교단은 정통이고, 어느 교단은 비 정통이라고 정의를 내리는가 하면, 또 어떤 자는 이단이고, 어떤 자는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매한 인간들이 마치, 토끼가 호랑이굴에서 왕 노릇하고 있는 짓을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누가 주인인줄도 모르고 종놈 주제에 안방에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쫓겨나게 되면 그때는 후회에도 아무 소용없다.


유대인들이 당시 예수를 자신들과 똑같은 존재로 알고 있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의 보내심을 받고 온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자신들과 똑같은 존재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과 마음속이 똑같은 존재로 알고 그가 하는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비유는 예수님의 출생과정을 보면 더더욱 확실히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볼 때,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지,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전혀 오늘날 우리처럼 생각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진짜로 아버지와 예수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온자가 “나는 예수와 하나다”라고 한다면 이단소리나, 미친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그 증거를 대보라는 것이다. 그 증거를 말로라도 해주어 보지만 다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당시 예수께서 물위로 걸었던 그런 표적 같은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영적인 백성이란 사실을 도무지 모르고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로 당시 예수께서 다루셨던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죄악들을 낱낱이 파헤쳐 주어보지만 그것으로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가르쳐 주어보아야 헛것이다. 영적인 백성들에게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파헤쳐 주는데도 그것을 하나님 아들이 일하는 것으로 믿지 못하고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런 자들은 자기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영적인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한 표적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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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5-01-02 20:57
조회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