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네 마음속의 우상을 제거하라!

오늘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즐겁게 여기는 명절 설날이다. 예로부터 명절하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그런 다음에는 차례 상에 올려놓았던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가 한해를 기원하는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또한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가까운 이웃들과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기도 하며 웃어른들로부터 덕담(德談)을 듣기도 한다. 이것이 생명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명절 풍습이다. 

그럼 조상들에게는 왜 차례를 지내는 풍습을 가져왔을까? 그것은 인간들이 조상들로부터 자기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자기를 낳아준 조상들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들 심리가 조상들에게 잘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사람들 마음을 자극하게 되어서 추석이나, 설이 되면 너도 나도 명절이라는 미명하에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들을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들 마음속에 이미 죽은 영(鬼神)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에게 차례라도 지내지 않게 되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게 되어 부득불 차례를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라도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지 않으면 뭔가 마음속이 허전함을 느끼게 되어 차례를 지내고 싶기는 한데, 사람들 처다 보는 눈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더군다나 예수 믿는 사람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하니까 더더욱 그렇게 할 수는 없고 해서, 뭔가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궁리 끝에 찾아낸 방법이 바로 추도식이다. 추도식은 소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들에게 차례지내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은 조상들에게 차례지내는 방법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단지 믿지 않는 자들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음식을 차려놓고 그 앞에 절만하지 않을 뿐이지 그 나머지는 똑같다. 차려놓은 음식 앞에 절을 했다고 해서 그것은 우상숭배이고, 절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은 우상숭배가 아닐 수 없다. 절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이미 마음속으로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거나, 죽은 자를 공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이는 벌써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가 추도식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므로 우상숭배라고 할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을지 모르겠지만, 왜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자가 죽은 자를 앞에 두고 예배를 드리는가? 자신들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배라는 형식을 취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자세가 죽은 자에게 가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배는 오로지 하나님 앞에만 드려져야 한다. 그런데 죽은 자를 놓고 무슨 얼어 죽을 예배를 드린다는 말인가? 
이것은 믿는 자들이 우상숭배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서 교묘히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는 우상숭배를 일삼는 더러운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 훨씬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鬼神)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말했듯이, 왜 사도바울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을 鬼神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이방인들 마음속이 부패하여 있는 고로 이미 그 마음속에는 죽은 영(鬼神)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죽은 자는 자꾸만 죽은 영을 찾게 된다. 그래서 산자라면 죽은 자를 찾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져야지 죽은 자를 놓고 무슨 예배를 들이냐는 것이다. 죽은 자를 놓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지옥에 가 있는 자가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도 아니고, 또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죽은 자의 죄악이 사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죽은 자를 놓고 예배를 들이냐는 것이다. 그들의 교묘한 우상숭배의 방법도 빛 앞에서는 결코 숨길 수가 없다.

오늘날 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닌 자들도 추도식이란 이름하에 모두가 鬼神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 자신들은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이미 마음이 부패한 인간들은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귀신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 인간들이 귀신과 교제를 나누지 않으려면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우상단지를 철거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우상단지는 귀신들이 살아가는 똥간이나 마찬가지다.

똥은 죄악이며 더럽다. 똥을 먹고 자란 귀신은 그래서 더럽기도 하고 죄로 인간들을 죽인다. 자신의 부패한 마음속에서 귀신이 살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똥간을 말끔히 청소해야 한다. 똥간을 청소하는 방법으로는 자신의 더러움을 입 밖으로 토설하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깨달은 죄악을 입 밖으로 토설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그런 사람은 주님의 마지막 긍휼을 기다리게 된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자신의 입으로 발설 했을 때와 발설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 때와의 차이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잘 모른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악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을 때에 다시는 그것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감쪽같이 숨기고 있던 비밀이 탄로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밀이 누설 되었다면 그는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바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주님의 긍휼뿐이다.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긍휼함을 바라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마음속으로 제대로 못 느끼고 있는 자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직도 누구를 미워하고 있고, 아직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 역시 아직도 자기 신분을 제대로 모르는 자이다. 이런 자는 아직도 똥집 주인이 누구라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자이다.

죄를 입 밖으로 끄집어 낸 자라면 그는 이미 자기 죄로 인해서 죽은 자이다. 그런 자가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주님의 긍휼뿐이다. 주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는 그런 자가 자신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주님의 은혜를 입느냐 못 입느냐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어느 시점에 서 있는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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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5-02-09 20:57
조회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