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리라!

주일 낮 설교

본문: 마태복음6:19-34

제목: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리라!


이 세상 이치로 보더라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는 말은 주인 입장에서 보면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두 주인 중에서 한 주인을 포기하고 다른 한 주인만 섬기고 있을 것이지, 양다리를 걸치고 이 주인도 섬기고, 저 주인도 섬기겠다는 것은 기회주의자다. 그런 자들은 이쪽이 별 볼일 없을 것 같으면 저쪽으로 붙고, 저쪽이 별 볼일 없을 것 같으면 이쪽으로 붙어서 그때그때마다 기회를 엿보며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를 두고 우리는 흔히 박쥐같은 인생이라 부른다. 박쥐는 훤한 대낮에는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서 날아다니는데, 이는 완전히 새와 쥐의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사는 것이다. 시대가 점점 타락으로 가다보니 요즘은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상대로 사귀기도 하고, 또한 남자들도 한 여자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헤어질 각오를 하고 다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들 심리가 이러다보니 아무리 육신으로 나누는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진실한 사랑이 없다.


성경에서는 이런 일들을 단호히 배제하고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겠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밭에 뿌리는 씨앗이라도 각각 종류가 다른 것이라면 함께 뿌리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에 팥을 심은 밭에 콩을 함께 심어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팥과 함께 콩을 심어놓게 되면 나중에는 팥인지 콩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팥은 팥대로, 콩은 콩대로 각각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성분이 있는데, 함께 심어놓게 되면 벌들이 꽃가루를 묻혀 나를 때 서로 섞어놓게 되므로 나중에는 팥과 콩의 성분이 섞이게 되어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사라지고 말게 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절대로 바꾸어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 될 수 없고, 또한 남자가 여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대 요즘에는 얼마나 타락의 정도가 심한지 남자는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이고, 반대로 여자는 남자가 되고 싶어 신체에 서슴없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창조질서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그것이 회복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은, 이미 악이 세상에서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들이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섭리를 거슬러서 사는 자체가 이미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신 교훈을 머릿속에 떠 올리며 우리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과연 누구를 섬기며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악을 섬기며 살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섬기며 살 것인가?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다 주님만 섬기겠다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이 자신의 주인을 버리고, 전혀 다른 주인을 섬기고 살기가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말처럼 그렇게 주님을 섬기고 살기가 쉬울 것 같으면 굳이 성경에서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에 주님은 강한 어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란 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쉬울 것 같으면 굳이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은 인간들이 실천하기에는 절대로 쉽지 않은 것들이다. 아니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로서는 절대로 이루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인간들이 하지도 못할 일들을 성경에는 기록해 놓았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사실 엄밀히 따져 말한다면 인간들로서는 어느 것도 성경에 기록한 내용대로 행동하며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은 성경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속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죄악 된 인간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죄악 된 인간들이 절대로 그것을 이루어낼 수 없는 것들이라야 그것이 비로소 하나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오로지 “너희 인간들은 죽어도 이 말씀을 못 지켜낸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씀이기도하다. 그런데 건방진 인간들이 자신이 오늘날 교회에서 무슨 감투를 쓰고 있고, 혹은 예배드리는 일을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살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런 자들은 입으로는 분명히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 있어서 사단을 섬기고 있는 자들이지, 절대로 하늘에서 오신 주님을 섬기고 있는 자들은 아니다. 주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먼저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에는 인간들이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도록 그런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기록된 말씀을 보고, 인간들이 깨달을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말씀들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자기 고백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후에 주님으로부터 긍휼함을 입고서야 비로소 자신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도 없이 입으로만 주님을 섬긴다고 하고 있으면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으로 하는 자들은 전부다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자들이다. 죄악 된 인간들이 새로운 생명의 주인을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옛 주인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가를 반드시 먼저 깨닫는 은혜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존재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결국 자신 속에 들어 있는 거짓에게 평생을 속아 살다가 나중에는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깨닫는다는 것은 보배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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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5-01-09 20:57
조회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