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법으로는 의롭게 될 자가 없다.

주일 낮 설교
본문: 로마서3:19-31
제목: 법으로는 의롭게 될 자가 없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져 보려고 그토록 열심히 노력해 보았으나 결국은 의에 이르지 못하고 모두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본인들 스스로는 의롭게 되었다 하여 예수를 믿지 안했지만, 예수를 믿지 않은 그것이 그들을 멸망으로 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의롭게 되는 것이 바리새인들 말처럼 행위(법)로 말미암는다면, 인간들이 법을 지키기만 하면 된 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도 믿을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그들 말대로라면 예수를 믿지 않고도 얼마든지 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들이 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완벽하게 법을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결국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법을 지킬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신 것일까? 아니면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편법으로 지키고도 완벽하게 지켰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과 하나님 중에 누구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설마 인간들을 향해서 거짓말은 안하셨을 것이고,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거를 삼을까? 그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다고 주장하는 내용들은 이렇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또한 사사로운 오락이나 물건을 사고파는 일 또한 금하라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 35:3절에 보면,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고 되어 있다. 그런 율법 조항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절대로 밤이 되어도 촛불이라도 직접 자기 손으로는 켜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밤이 되어 컴컴한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때 편법을 쓰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 불을 켜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율법 하고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 자신들은 율법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행위인가? 내가 직접 하는 것만이 죄를 범하는 것이고, 남이 해 준 것은 죄가 안 된다는 말인가?

사실 “안식일에 너희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미리미리 전날에 음식을 준비하여 안식일에는 불을 피워서 음식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율법을 연구하는 자들이 안식일을 더 잘 지키고자 하여, 안식일 하루만큼은 어떤 불도 켜지 않는 것이 좋겠다하여 백성들에게 법으로 공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로의 유전이다. 그런데 막상 생활을 해보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이것도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 지켜졌으나, 시간이 점점 갈수록 불편함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편법(이방인들의 도움)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불을 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는 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켰다고 우쭐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반면에 세리 같은 자들은 당장에 생활에 불편한 것을 느끼게 되자, 남 시킬 것도 없이 본인이 직접 불을 키고 살아버린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런 세리들을 향해서 죄인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세리 자신 또한 그것이 장로의 유전을 범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에 생활에 불편을 주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이방인들에게 매 안식일마다 찾아가서 불 좀 켜달라고 애원해야 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불을 켜버리고 죄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던 것이 도리어 자신을 하나님 아들 앞에서 죄인으로 고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거룩한 백성으로 치부하며, 안식일만 되면 끝까지 이방인의 손을 빌려서 불을 키면서도 그것이 마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것처럼 고상을 떨었던 바리새인들은, 자신은 끝까지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기 때문에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니라 하여 예수를 믿지 안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법은 육체가 아니고 마음속으로 성령의 법을 지켜야 한다. 육체로 신앙생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에 사사로운 오락을 금하라고 명령 했다면, 영적인 백성들에게도 그 법이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다만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그 법이 육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에 사사로운 오락을 금하라고 했다면 그들은 눈으로만 TV를 안보면 되지만,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눈으로 안보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TV화면속의 그림만 상상을 해도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 중에도, 바리새파 사람들이 남아있어서 평상시에는 애국가가 다 끝날 때까지 TV를 보다가도, 주일날만 되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그날만큼은 죽어도 TV를 안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아! 지금쯤 무슨 프로에 누가 나와서 무엇을 하고 있을 텐데 하고는 TV프로그램을 마음속으로 줄줄이 다 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죽어도 TV를 눈으로 직접 안 보았기 때문에 주일성수를 착실히 했다는 것이다. 눈으로 본 것만이 TV를 본 것이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TV를 본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런 자들이, 과연 하나님 아들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겠는가?

그런 반면에 유대인 세리 같은 자들도 있다. 평상시 그렇게 즐겨보던 TV를 주일날이라고 못 보고 있으니까 좀이 쑤셔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주일날 TV를 켜놓고 봐 버린 것이다. 한두 번 보다보니까 왜 그렇게 주일날은 재밌는 것도 많이 하는지, 도저히 눈을 돌릴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주일날 예배만 끝나면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보는 자를 두고, 바리새파 기독교인들은 죄인이라고 혹은 타락했다고 놀려 대면서 그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인들 앞에도 하나님 아들이 오셨다. 오셔서 하는 말이 주일 성수를 제대로 못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기독교인 세리는 맨발로 달려 나가서 주님 앞에서 자신이 맨 날 주일날 TV만 보던 죽일 놈이라고 대성통곡을 한다. 주님은 그의 진실한 고백을 듣고 그의 죄를 사해 주신다. 그런 반면에, 바리새파 기독교인은 주일날 TV한번 보지 않고 주일성수를 착실히 잘 드렸다 하여 주님 앞에서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안했다. 자신은 주일성수를 범한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끝까지 마음속으로 TV본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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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5-03-13 21:03
조회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