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

예수님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나 모두 법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온전한 자들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이 온전해 지려면 반드시 유대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만이 온전해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에다가 율법을 지켰다하여 스스로 의인이 되려다 모두 멸망으로 갔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란다.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들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이런 자들을 두고 “나보다 먼저 온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 앞에 오신 예수께서는 분명히 유대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 하고 계시는데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의미를, 곧바로 자신들에게 적용시켜서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다 하여 구원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아직은 모두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온전케 된 자가 단한명도 없다. 만약에 기독교인 중에도 자신이 벌써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이 역시 영적인 절도요 강도에 해당하는 자다. 율법 아래 갇혀 있는 육적인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육체를 입고 오시는 하나님 아들이 필요하듯이,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영적인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영적인 아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거부하고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 즉, 영생에 들어 갈자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위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사랑 하라!” 하신 말씀도, 사실은 죄악 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말씀이다. 마음이 부패하여 죄밖에 나올 것이 없는 인간이 무슨 수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며,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인가? 죄 아래 있는 인간이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봤자 유대인들로서는 겨우 성전에 나가서 양을 잡는 것이 전부이고, 오늘날에는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행위가 전부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유대인들은 고작해야 자기 맘에 드는 사람 집에 찾아가서 위로하는 것이 전부이고, 오늘날에는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에게 돈 몇 푼 집어 주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모든 인간들이 지킬 수 없는 것들만 기록해 놓았으니까 잘못된 말씀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그런 말씀들을 기록해 놓았을까? 그렇게 지키지도 못할 말씀들을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도 많이 기록해 놓았을까? 사실 성경에 기록해 놓은 엄청난 말씀들은 인간들로서는 도무지 지키지 못할 말씀들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알고 있는 사람은 인간 중에 아무도 없다. 죄 아래 살고 있는 종들로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이런 사실들을 모두 알아버린다면 그들은 아예 지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이런 사실들을 모두 비밀로 해놓고 말씀들을 지키라고 다그쳤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아들로 말미암아서 죄 아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오직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을 지켰다고 구원에 이를 것처럼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악 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지키지도 못할 법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구원받았다고 우쭐되고 있었으니 얼마나 괘씸하게 보였겠는가? 

사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죄악 된 인간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지킬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하나님 아들만이 그 말씀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말씀과 법을 인간들에게 먼저 주어서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불가능을 깨닫고 아들을 믿고 나올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 말씀을 지켜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발버둥 치다가 한계에 부딪혀서 죄인이라고 손이라도 들고 나오면 좋으련만 곧 죽어도 손은 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는 목적이 바로 이것을 해결해 주시려고 하는 것인데, 인간들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질긴 것이 인간의 자존심이다. 

가까운 예로, 이곳에 있는 우리 성도들만 보더라도 자신들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남편 앞에서 자신을 무릎 꿇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 시치미 뚝 떼고, 남편들에게 가서 무릎 꿇으라 하면 당장에 가서 시행을 한다. 결과는 진실로 남편 앞에 무릎 꿇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남편에게 자신의 약점만 노출시키고 말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인간들이 하는 짓이다.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은 보냈건만, 그들은 그것을 스스럼없이 시행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결과를 물어보면 잘 안 된 것 같다고 말끝을 흐린다. 그런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왜 아녀자들이 남편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이 불가능한가? 인간은 모두 죄 아래서 태어났는데 무슨수로 남편 앞에 가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불가능하다. 설사, 무릎을 꿇는 자가 있어도 그것은 마음도 없이 그저 육신으로 꿇는 것이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꿇는 자가 아니다. 그럼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안 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인간들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이 그 일을 대신 해주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들만이 자신들의 그 일을 대신 해 주실 분으로 도무지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당연히 그들이 가정에 돌아가면 자신들이 그 일을 직접해보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너희들로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었건만, 아들을 믿기 싫으니까 어리석은 인간들이 어리석은 짓은 죄다 골라가면서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경 말씀을 지켜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죄 아래 종들이나 조금도 다를 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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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5-04-10 00:00
조회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