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마음을 다하지 않는 것이 죄니라!

하나님은 좌로나 우로나 조금도 치우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가령,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당장에 하나님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저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예우를 다 갖췄다고 생각했다가는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믿는 자가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대우했다는 말은, 결국 그가 거짓으로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죄로 인하여 더 큰 화를 불러 오게 되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인데, 그런 마음은 쏘옥 빼버리고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마음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한번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든 예의를 갖췄다고 생각한다면, 인간들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사람들 마음속을 살피시는 분께서, 인간들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를 느끼고 계시겠냐는 것이다.

하물며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끼리도 믿었던 친구나 가족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면 몇날 며칠 동안을 밤잠을 설쳐가며 분노를 다스리기가 힘이 드는데, 인간들 보다 몇백 만배나 흠이 없으신 하나님께서야 더러운 인간들에게 만홀히 여김을 받게 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냐는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못해서 하나님도 나중에는 그것이 분노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행음을 일삼자, 비느하스가 그들을 찔러 죽였을 때, 하나님의 분노로 그들을 죽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기에 인간들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눈에 보이는 인간들만큼이라도 예우를 해주셔야 하는데, 인간들 모두가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인간들끼리도 어제 만났다가 헤어지고 나서 그 다음날 다시 또 만나면 “밤새 안녕하십니까?”하고 문안을 여쭙는데, 어찌 하나님에 대해서는 최소한 그런 예의도 갖추어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피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율법을 주신 목적도 모두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종용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율법의 바른 목적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형식만 남아서 그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예를 갖췄다고 하고 있으니,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있는 죄가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이런 일은 영적인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백성이 되었으면 더욱더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텐데,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처럼 육체로 예배드리는 일을 통해서 의로워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누구도 의로워질 수 없다고 성경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죽어도 율법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율법의 흉내를 내면서, 그것으로 의로워지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은 마음속에 주신 법이다. 따라서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마음속에 있는 죄를 살피는 것이 성령을 제대로 따라 사는 방법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다 보면 마음속이 부패한 이방인들은 어느 누구도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는 인간임을 느끼게 될 때, 인간은 비로소 겸손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목적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성령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는 누구하나 제대로 깨닫고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 영적인 백성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모두가 자신들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라 말은 하면서도 그것이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기까지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신앙생활 자체도 영적인 백성답게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따라서 모두들 육체로 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로 하다 보니 모두가 육체로 구원 받겠다고 몸에 병이라도 들면 그것을 낫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기도하고, 못 먹고 못살면 잘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식들이 좋은 대학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뿐이지, 도무지 영적인 백성으로서 강퍅해진 자신의 마음속을 놓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자신 속에 성령이 계시니까 그것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생각하여 구원 받았다 생각하고, 육체만 거룩하게 꾸미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들 말처럼 정말로 그리스도 영이 자신의 마음속에 계시다면 그것은 온전해진 것인데, 무엇 때문에 또 다시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는 먹고 마시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속이 온전해진 자는, 예배도 십일조도 헌금도 주일성수도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완벽하게 모두 이루어 졌기 때문에 거기다 무엇을 더 얹을 수 없다. 여기에다 무엇을 더 한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그에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말이니,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그리스도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예배는 아직 미완성속에 있는 자들이 참 형상을 붙잡기 위해서 드리는 한과정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고 나서 성전에 나가서 소 잡고, 양을 잡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보았는가? 예배는 아직 온전치 못한 자들이 온전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 자신을 깨달아가는 한 과정인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들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아들로 말미암아 그도 온전해 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율법으로 신앙생활 하던 시대가 아니고, 영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이제는 영적인 백성들이 구원에 들어가야 할때가 된 것이다. 영생에 이르러야 할 영적인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는데 육신으로 저지른 죄악만 깨닫고, 마음속으로 저지른 자신의 죄악을 보지 못한다면 죽어도 마음속의 죄는 해결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영적인 백성이 육신의 질병으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다 하더라도, 마음속의 질병을 치료받지 못하게 되면 그는 멸망으로 가게 된다. 마음속의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이 얼마나 부패해 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영혼을 치료 받을 수 있다.

영적인 백성들이 지금까지 성령 아래 살면서, 성령의 종들을 통해서 육신적인 질병을 치료받았다면, 이제는 영적인 백성들이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 마음속의 질병을 치료받아 영혼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영적인 백성들이 받아야 할 축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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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5-03-20 21:03
조회
53